고두성 이사·서귀포지사장

1982년 학력고사 전국 수석에 서울대학교 법학대학 수석 입학, 제34회 사법고시(1992년) 수석 합격 등 화려한 이력에다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한 원희룡 지사의 발언은 거침이 없고 시원시원하다. 

2014년 7월1일 취임한 직후 지역구 예산 배정을 놓고 도의원들을 부패한 청산의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발언으로 극한 대립을 초래하는 등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여주던 원 지사가 임기의 반환점을 돈 요즘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있다.  

집권당 사무총장까지 역임한 3선 국회의원 출신이 '잔 가시가 세다'는 제주지역의 풍토를 이제야 실감, 도의원들의 입장을 적극 수용한 때문인지 원 지사의 발언이나 태도가 최근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다. 한 도의원은 제주도가 도의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을 보면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지기도 했다.

이처럼 원 지사가 도민사회에서 변화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얘기를 듣고 있는 가운데 본인 특유의 자신만만함이 결국 사고(?)를 쳤다.    

지난달 31일 제주대에서 도내 대학생들과 함께 한 토크 콘서트에서 최근 최대 이슈로 떠오른 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과 관련, "제주도민 상당수가 대규모 복합리조트 설립에 따른 난개발과 정체성 약화를 우려한다면 허가를 안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 지사로서는 대학생들이 오라관광단지로 인한 청년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인데다 자신의 임기 도중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는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발까지 의식, 원론적인 입장을 피력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당장 제주도가 나흘 뒤 사업자인 JCC㈜에 환경영향평가 보완을 요구했다. 앞서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 심의를 통과, 도의회 동의 절차만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급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러자 JCC㈜ 박영조 대표이사는 지난 9일 매종글래드호텔에서 열린 사업설명회에서 "언제는 지지하고, 도민이 반대하면 언제든지 중단시키겠다는 것이냐"며 "그러면 사업자는 봉이냐"고 원 지사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사실 6조28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사업비가 투입되는 관광단지 개발사업을 한낱 구멍가게로 취급하듯 상당수 도민이 반대하면 허가를 안주면 될 것이 아니냐는 도지사 발언에 사업자가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사업자가 개발사업 인허가라는 생사여탈권을 쥔 도지사에 대해 이렇게 들이대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원 지사와 사업자가 어차피 통과될 것이라는 암묵적 합의 아래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도 모르지만 박 대표이사가 간과하는 것도 없지 않다.

15년 이상 묵혀오던 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에 손을 댄 JCC㈜는 지난해 7월 환경영향평가 준비서를 제출한 이래 도시계획위원회·경관위원회·교통영향평가 심의 및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 심의 등 모든 절차를 1년 3개월만에 끝마쳤다. 

따라서 4~5년 전부터 관광단지나 유원지 조성사업에 착수, 이미 수십억원의 비용을 날리고도 아직까지 인허가절차를 마무리짓지 못한 채 불평 한 마디 못하고 마냥 원 지사의 입만 쳐다보는 몇몇 사업자들에게 박 대표이사는 복에 겨운 사람이다.

이같이 설화 아닌 설화를 겪은 원 지사는 지난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비상시국회의에서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와 관련, "이것은 특정인의 일탈이 아니라 대통령 본인의 문제다. 몸통은 대통령"이라며 거취에 대한 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여권 잠룡 가운데 하나로 당연히 나올 법한 말이다. 

누구나 할 말은 하되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라는 경구를 잊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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