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다큐멘터리 감독

제주도 서귀포시 한적한 동네의 도로변, 10평(33㎡)도 안 되는 공간의 세는 월 50만원. 지난해 필자는 이곳에 헌책방을 차렸다.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아는 사람들이 기증도 해주고 더러는 매입도 해서 이제는 책장이 모자랄 정도로 구비됐다. 하지만 책 매출은 월 10만원 이하요, 순이익으로 따지자면 답이 안 나온다. 

다행히 후배, 친구, 친구의 지인 등을 통해 자잘한 일거리를 소개 받아 생활비와 가게 월세를 메워 나간다. 태양광 현장에 나가서 나사도 조이고, 고등어 같은 수산물도 팔고, 한라봉·천혜향 등 농산물도 보내고, 디지털 도어락 등의 전자제품을 설치하는 등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한다.

육지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10년 넘게 영화강사 일로 밥벌이 하며 가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던 필자는 이대로는 생활이 되지 않겠다 싶어 아버지가 운영하는 철물점에 들어갔다. 세월호가 침몰했던 2014년 4월이었다. 

그러나 고집불통 아버지와 마찰이 심해져갔고 우연한 계기로 육신과 머리를 식힐 겸 제주에 내려왔다가 번개 맞은 것처럼 제주 이주를 결정했고 벌써 3년차가 됐다.

제주도는 필자에게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도 줬다. 한국전쟁 당시 제주도로 피난 와서 11개월 살다가 떠난 이중섭.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재작년 가을부터 카메라를 들었고 스테프들의 고생과 많은 사람들의 지지 덕분에 올해 상반기 완성을 목표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제목은 '이중섭의 눈'.

먹고 살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또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필자는 '이중섭이라는 피난민의 눈이 그 당시 무엇을 보았을까?', '1950년대의 풍경과 지금 현재의 모습은 어떻게 얼마만큼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간혹 구할 수 있었던 제주도의 과거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곳은 거의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깊은 곶자왈이나 만장굴 속으로 들어가면 태고의 풍경 그대로겠지만 여기저기에서 굴삭기가 땅을 파고 '타운 하우스' 같은 건물들이 올라가는 광경들을 보자면 몇 년 전 육지에서 벌어졌던 4대강 사업이 옮겨온 듯하다. 

외형적인 변화는 정신적인 영역의 변형도 수반한다. 마을 공동체는 파괴되고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대도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변해간다. 대형마트에서 소비를 하고 이웃 간의 대화는 줄어든다. 출퇴근 시간 도로는 마비되고 학교에서 돌아온 학생들은 학원으로 직행해서 별을 보며 귀가한다. 대를 이어 쳇바퀴를 굴리는 경쟁사회의 삶. 이러한 삶들은 이미 육지에서 서울에서 많이 보면서 살았었는데….

손해가 뻔한 헌책방을 당분간은 유지할 계획이다. 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자리도 마련할 생각이다.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소비보다는 생산적인 활동을 도모하면서 제주라는 공동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공간으로 키워가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헌책방으로 출퇴근 하면서 보는 풍광들 중에서 가장 제주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들과 산에 돌담으로 둘러싸인 묘다. 누구의 묘인지는 때 되면 성묘하러 가는 연고자들만 알고 있겠지만 말없이 누워 있는 묘는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한국전쟁, 4·3, 일제강점기…. 슬픈 역사의 흔적은 일제의 비행장이었던 알뜨르에도, 중공군포로수용소 자리였던 제주공항에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지만 분명한 것은 그 하루하루 시간을 견뎌내고 살다 갔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제주에서 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그 일원이 돼 살고 있다는 사실에 겸허한 마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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