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춘 제주발전연구원장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호사유피),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인사유명)'는 옛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데 윌리엄 보덴(William Borden)의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필자의 결혼생활과 연구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보덴은 1887년에 미국에서 태어나 1913년에 26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아버지는 큰 목장을 경영하는 부호여서 세계일주여행을 보덴의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줬다. 보덴은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에 큰 충격을 받고 그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결심했다.

보덴은 미국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에 입학하기 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어마어마한 유산을 다 정리하면서 'No Reserve' 즉, '아무 것도 남기지 않겠다'라고 기록했다.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부친이 돌아가셨으니 가업을 이어 달라는 연락이 가족으로부터 왔지만 자기의 갈 길을 가겠다는 각오로 'No Retreat' 즉, '후퇴하지 않겠다'라고 기록했다.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그의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아랍어를 배우러 이집트로 갔으나 네 달 만에 척수뇌막염에 걸렸고 그 이후 한 달도 못 돼 죽었다. 그의 유품이 미국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성경책에 'No Regret' 즉,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기록돼 있었다.

보덴의 삶의 철학은 필자의 결혼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 No Reserve는 '비밀 없기'로 적용하고 있다. 처가 모르는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고 사회생활에서 맺어진 인적 네트워크도 처에게 비밀로 하지 않는다. No Retreat는 '후퇴하지 않기'로 적용하고 있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잠시 쉬어 가더라도 결코 후퇴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갈등이 생기면 처를 변화시키려고 설득하기보다는 차이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하고 처의 단점을 보는 눈을 감고 장점을 보는 눈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No Regret는 '후회하지 않기'로 적용하고 있다. 인생의 연륜이 더해 갈수록 좀 더 베풀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처를 감동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보덴의 삶의 철학은 연구생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No Reserve는 '혼을 다하기'로 적용하고 있다. 연구 주제를 고민하고, 연구의 내용을 구성하고, 연구를 수행할 때 모든 에너지를 남김없이 쏟아 부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No Retreat는 '후퇴하지 않기'니 한 번 시작한 연구는 연구보고서가 인쇄돼 나올 때까지 일보의 후퇴함도 없이 전력으로 질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No Regret는 '후회하지 않기'니 매일, 매주, 매월, 매분기, 매년 연구 활동을 결산하면서 결코 후회함이 없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덴은 요절했지만 그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다. 중국 감숙성 난주에 가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병원(The Borden Memorial Hospital)을 세워 중국의 무슬림들을 치료해 주고 있다고 한다. 필자의 삶은 어떻게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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