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역사를 거부한다.
 16세기 초 700만명에 달했던 인구가 1900년대 초반에는 무려 600만명이 줄어 100만명에 불과했다. 인구의 85%가 400년 사이에 급속하게 감소한 것이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 등 대규모 전염병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자신들의 땅에서 살고 싶어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그들의 소박한 희망은 무참히 짓밟혀야만 했다.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로부터.

 이들의 이름은 바로 ‘인디언’으로 불리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이었다.

 우리에게 북아메리카 원주민은 서부개척시대를 다룬 웨스턴 무비에서 ‘선량한’ 미국인들의 역마차를 습격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잔인’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철저히 미국인의 시각에 의해서 재단된 이들의 이미지는 ‘늑대와의 춤’에서 다소나마 시각교정이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우리에게 있어 야만과 잔혹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래리 짐머맨의 「북아메리카 원주민」은 철저히 승자의 시각에서 쓰여진 기존의 인디언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보인다.

 인디언이란 북아메리카를 서인도 제도의 어디쯤으로 인식해 붙인 말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사람들(people in Dios)’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서구의 과학이나 역사의 시각에서 제시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그들 나름의 방식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캐나다 북부의 이누이트로부터(우리가 흔히 에스키모인이라고 부르는) 애리조나 사막의 푸에블로 인디언에 이르는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정신적 전통을 풍부한 자료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역사의 현장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생활상은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지는 역사의 해석을 거부한다.

 1876년 미국 기병대 소속 파견대가 몬태나의 리틀빅혼 강에서 인디언 복병들을 만나 최후의 한 사람까지 장렬하게 싸운 리틀빅혼 전투는 미국인의 불굴의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리틀빅혼 전투의 진실을 다르다. 비장한 각오로 최후를 맞은 영웅적 항전이 아니라 채 30분도 못 넘기고 기병대의 혼란스런 패배와 도주로 끝난 전투였다.

 미국의 대 인디언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리틀빅혼 전투의 기록은 현장에서 살아남은 인디언 전사들의 증언을 철저히 무시한 미국 공무원들이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역사기록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자연을 닮은 그들의 삶
 치리카후아 아파치족의 지도자 제로니모와 훙파파 수족의 성자 시팅 불이 미국인들이 침입에 맞선 이야기들이 화려한 도판과 함께 흥미를 더한다.

 아메리카의 대평원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과 정령에 기대어 살았던 북아메리카 원주민들. 이들의 삶은 문명의 잣대로 재단하는 문화적 편견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 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때 7000만을 육박했던 원주민들은 1830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인디언 이주법 선포로 급속한 감소를 이룬다. 백인들의 서부 진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네바다주의 3분의 2가 넘는 자신들의 땅을 잃어버린 원주민들. 이들은 지금 한때 자신들의 고향이었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다.

 원주민의 시각에서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을 들여다본 이 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빼앗긴 토지를 되찾으려는 원주민들의 노력이다.

 서부 쇼쇼니족은 1863년 루비 유역 협약에 의해 네바다 주의 3분 1정도의 땅을 빼앗긴 이들은 토지를 백인들에게 양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백인들에게 사용하도록 했을 뿐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금도 이들은 의회의 법률 제정을 통해 자신들의 토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백인들은 400년 동안 ‘인디언으로서의 모든 것을 말살하고 인간을 구원한다’는 미명 하에 자신들의 문화를 강요했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이제는 사라진 부족들의 언어를 다시금 배우며 대지와 하나되며 살았던 옛 시절의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도판과 사진을 싣고 있어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대중적 이해서로 손색이 없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아타파스카어, 이로쿼이어 등 한때 300개가 넘는 방언을 구사하며 그들의 삶을 영위했다. 하지만 영어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 현실 속에서 이들의 언어는 대부분 사멸됐다.

 하지만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사용이 완전히 중지된 그로방트르어를 배우며 옛 언어를 복원하고 있다. 이런 이들이 노력으로 오클라호마 대학에서는 현재 다섯 종이 넘는 인디언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 사라진 언어를 복원하려는 그들의 노력 앞에 우리는 무엇을 되새겨야 할 것인가. 미국식으로 사고하기를 강요받는 현실 앞에서 문화에 대한 강요가 빚어낸 인류사적 비극을 극복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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