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지에서의 제자를 오랜만에 만났다. 이제는 어엿한 애 아빠로서 사회인으로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오랫동안 잊혀졌던 아니 가끔씩 생각나는 일들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초임지에서의 애들은 오히려 선생님의 실수를 감싸주고 도우려는 애들이었다. 친구처럼 내 주위를 맴돌고 자율학습이라는 명분으로 퇴근시간까지 늘 같이 생활했다. 글짓기도 붓글씨도 선생님이 최고인양 열심히 따라하는 애들이었다. 전문적 지식도 모자랐고 교수법도 서툴었지만 이이들은 순수하고 천진한 모습으로 나를 따랐고 그 애들을 사랑했었다.

 그런데 가끔 생각나는 일이 있다. 하루는 내가 아끼는 여자애가 내 일기장을 보고 있었다. 순간 앞 뒤 생각도 없이 화를 냈는데 "글짓기 작품인줄 알았습니다"하는 그 애 말을 듣고는 너무나 미안했지만 그 순간에도 그 후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못했다. 지금 제주에 살고 있다면 한 번 보고 싶은데 제주를 떠난 모양이었다. 그 후부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교사가 되리라 결심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그 철학을 교사들은 흔히 부정한다. 하지만 가끔씩 정말 그렇구나 하고 믿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합주부 지도를 할 때 애들을 너무 혹사시킨 것은 아니었나 하고 반성할 때가 가끔 있다. 방과 후 두 세시간씩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연습을 시켰으니 그 애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교사가 좀 더 실력 있고 가르치는 능력이 뛰어났더라면 그 만큼 힘들지는 않았으리라.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으니 음악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정말로 교사의 무능이 아니었던가. 합주는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신나게 연주할 수 있게 도와줬어야 했는데….

 체벌이 금지되고, 체벌에 대한 찬반이 강하게 맞서는 가운데 나도 가끔은 체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난날 내가 행했던 체벌이 정말 교육적이었을까? 하는 반성 아래 너무 심한 경우도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그 때는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 당시의 제자를 만나면 내가 좀 심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은 제자도 있는데 불행하게도 그 제자는 좀처럼 만날 수 가 없다.

 교육 경력에 비례하여 학생들을 이해하는 교사가 되고 싶은 것은 욕심일까? 나이는 들어가고 교육 경력은 쌓여 가건만 아직도 밝은 얼굴로 맑은 얼굴을 대하는 교사가 되기는 멀었다. 6학년을 졸업시킬 때에는 자신 있게 그 애들에게 말했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나에게 찾아오면 이유도 묻지 않고 어떤 어려운 일도 도와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T군이 나를 찾아 왔을 때 나는 마음의 벽을 스스로 느낄 수가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정말 어렵게 살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씩씩하게 생활하던 T군이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만 같은 중학교 선생님이나 동사무소 직원을 원망하기도 했었는데 정말 나는 그 학생을 믿었을까?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 학생의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어느 날 문득 휴가 나왔다고 불쑥 나를 찾아오면 정말 반가이 맞이할 수 있을까? 마음이 넓은 어머니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문명자·함덕교 교사>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