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자비정사·논설위원

'역지사지(易地思之)',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상(上)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무슨 일이든 자기에게 이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와는 대립된 의미로 쓰인다. 

우(禹)는 중국 하(夏)나라의 시조로 치수(治水)에 성공한 인물로 알려졌다. 후직(后稷)은 신농(神農)과 더불어 중국에서 농업의 신으로 숭배되는 인물로 순(舜)이 나라를 다스릴 적에 농업을 관장했다고 전해진다. 

맹자는 우 임금과 후직은 태평성대에 세 번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해 공자가 그들을 어질게 여겼으며 공자의 제자인 안회(顔回)는 난세에 누추한 골목에서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다른 사람들은 감내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안빈낙도(安貧樂道)의 태도를 잃지 않아 공자가 그를 어질게 여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맹자는 "우와 후직, 안회는 모두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 서로의 처지가 바뀌었더라도 모두 같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평했다. 곧 맹자는 안회도 태평성대에 살았다면 우 임금이나 후직처럼 행동했을 것이며 우 임금과 후직도 난세에 살았다면 안회처럼 행동했을 것이라며 "처지가 바뀌면 모두 그러했을 것"이라는 뜻으로 '역지즉개연'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처럼 '역지즉개연'이라는 표현은 오늘날 쓰이는 '역지사지'의 의미와는 다르게 태평한 세상과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다. 

그런데 맹자는 우 임금과 후직에 대해 논하면서 "우 임금은 천하에 물에 빠지는 이가 있으면 자기가 치수를 잘못해서 그가 물에 빠졌다고 생각했고 후직은 천하에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자기의 잘못으로 그가 굶주린다고 생각해서 백성 구제를 급하게 여겼다"고 말했다. 

그리고 맹자 '이루편'에는 "남을 예우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기의 인자함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기의 지혜를 돌아보라"는 말도 나온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야당이던 시절, 다른 사람의 탄핵심판 과정을 지켜보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부정하는 것은 국가 체제의 부정이라 떠들던 그녀가 국민의 힘에 의해 탄핵당하는 대상이 됐다. 

그런 그녀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부정하고 이 사회에 갈등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진정 국민을 생각하는 지도자였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자기 중심의 시각이 아니라 상대의 시각에서 헤아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전통에도 자신의 입장을 절대화하지 말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사태를 성찰해볼 것을 권유하는'역지사지'라고 하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갈등과 혼란을 영원히 종식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갈등의 극단화와 폭력화를 완화하며 각종 대결로 일그러진 우리의 현실을 유연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갈등의 영원한 종식이란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현실에 더 깊은 상처를 내기보다는 갈등을 일으키는 여러 입장들이 자기 절제의 절묘함으로 서로 잘 섞일 수 있는 유연한 현실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더 평화롭고 윤리적이다. 

그리고 이런 상대주의적 해결방식이 더 아름답다. 역지사지를 해보자는 건 이타성을 갖자는 게 아니다. 의식개혁은 강압적인 요구나 직접적인 훈계·계몽으론 이뤄지기 어려우며 다양한 이해관계를 상대방과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여왕의 자리가 아닌 국민의 자리에서 역지사지를 통해 이 사회가 통합과 단결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게 역할수용(role taking)을 해주는 것이 전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남는 빛나는 업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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