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전 동국대교수 겸 학장·논설위원

춘화추월(春花秋月)의 글귀가 전해져왔다. 봄철에 꽃이 피고 가을철에 밝은 달이 솟아오르는 '아름다운 풍경'을 표현한 것이다. 이들 계절은 '온혈(warm blood)동물속성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하기에도 알맞다. 차갑지도 않고 덥지도 않기 때문이다. 겨울철에 움츠렸다가 따스한 봄철에 활동을 재개하는 것도, 이런 '쾌적한 수준(comfort level)의 기온'과도 관계된다.  

민감한 반응은 생태계에서 먼저 드러나고 있다. 봄에 꽃피우는 것도 구체적 증거로 남는다. 제주도의 봄소식은 유채꽃에서 시작되고 벚꽃의 경우 '춘삼월(春三月)'에 본격화된다. 이런 점에서 벚꽃은 봄철이 본격적으로 다가옴을 알리는 '계절의 전령사'이며 꽃이 만발할 경우 사람의 눈까지 매혹시킬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드러낸다. 이것이 볼거리를 제공하는 관광대상이며 계절이다.  

제주도는 한국최남단에 위치해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에서 꽃과 함께 봄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따스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고 제주도가 남쪽문턱에 놓인 사실과도 관계된다. 이런 사실을 인정했음인지 효돈(孝敦)마을에는 '벚나무를 가로수'로 일찍 심어왔다. 남쪽이면서 북서풍을 막아주는 '산세'를 이용해온 선구자의 지혜에 따른 것이다. 

이곳의 벚꽃은 아름다운 풍경과 '마을의 명성'을 대외에 알리는데도 기여해왔다. 선구자(pioneer)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오늘날 후속세대들이 '선조의 혜택'을 누리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는 것이 세상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곳에는 예전부터 세 마을이 합쳐졌는데 '돈독한 효심'을 강조해 모두가 효(孝)자를 마을이름에 담아냈다. 충효사상과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규범'을 중시해온 전통과도 관계된다. 

마을을 이끌어온 중심에는 경주김씨가 있었다. 태종 때에 훈련도감(訓練都監)벼슬을 살아온 것을 보면 '왕자의 난세'에 좌천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은둔으로 일관해온 유배인의 일반성향과 달리, 창업(創業)에 힘을 쏟으며 실용노선을 걸어왔다. 이것이 목마(牧馬)에 주력하는 한편, 조정을 향해 '준마(駿馬)를 진상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그 결과 공신(功臣)반열에 오르고 집안의 명예로서 대를 이어왔다. 

감목관(監牧官)집안의 내력을 갖게 된 것도 여기에 근거한 것이었다. 또한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는 명언이 등장할 정도로 제주목마(牧馬)에 큰 공적을 쌓아왔다. 중요한 것은 이후에 정착한 오-현-강(康)씨 등이 결합된 집성(集姓)촌을 이루면서 '마을공동체'로 발전해온 점이다. 여기에다 근·현대에도 혁신적 자세를 보이면서 '선진화된 동족마을'로서 위상을 굳혀왔다. 
벚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것도 혁신적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신품종에만 편중되지 않고 동백과 팽나무 등 '신구(新舊)요소에 걸친 생태조화'를 이뤄온 점이다. 또한 일찍부터 초등과 중등에 걸친 '독립학구(學區)제'를 도입함으로써 인재양성에도 힘쓰는 한편 수리(水利)조합과 수도시설확충으로 주민소득향상은 물론 복지(well being)증진에도 힘써왔다.  

이런 흐름은 '의식의 선진화와 유능한 인재배출'로 이어졌다. 대표적 사례로서 오용국이 초대 국회의원으로 등장하는 한편, 이후 김(金)모씨를 다선의원으로 배출했다. 또한 독학(獨學)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근검형의 시범'을 선보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대학과 병원을 설립한 '현대기업가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한편, 중앙에서 활동하는 학자배출로 발전했다. 

그 결과 '제주도에서 선망하는 마을'로서 위상을 굳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이 '탐방하는 시범부락'으로 선정하는 것은 물론 '후속마을의 탄생'을 장려하는 것도 필요할 때임을 암시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