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경 제주4·3희생자 유족회장

이제 곧 4월이다. 계절의 바뀜이 곧 세월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기에 계절이 변할 즈음이면 의레 허송세월을 보내버렸음을 한탄하며 자성(自省)의 시간으로 채찍질을 하곤 한다. 

세월의 빠름은 제주4·3에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최대비극의 역사로 아로새겨진 제주4·3이 올해로 69주년을 맞이한다. 그 아픔의 현장을 몸소 체험했던 세대들은 씁쓸하게도 이미 고령의 증언자로 인생의 일몰(日沒)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70주년을 맞이하며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조명해보고 자칫 나태해졌던 자세를 가다듬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70주년에는 '제주4·3의 해결이 제주도의 공통의 과제이며 그 과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의무는 제주도민 모두에게 있다'는 공감대 의식이 필요하다. 그 공감대 속에서 현재까지 이뤄놓은 나름대로의 성과를 분석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현재까지 일정부분 이뤄놓은 과업들 중에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과감히 바로잡아야 하며 행여 빠뜨린 부분은 반드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제도적인 틀에서만 한정시킬 것이 아니라 평화(平和)와 인권(人權)의 관점에서 제주4·3에 대한 보편적 국민의식의 확대 차원으로 진행되길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3월1일에 출범한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와 한창 출범 준비에 여념이 없는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의 역할은 막중하다 하겠다. 

이러한 주체들이 중심이 돼 그동안 미비했던 과제 실현을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세부적인 전략 수립에 매진해야 한다. 

제주4·3의 해결 과제를 논(論)함에 있어서 항상 화두에 오르는 의제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문제, 수형인의 실질적인 명예회복, 희생자 및 유족 신고 상설화와 유족 복지 확대를 위한 4·3특별법 개정, 지속적인 유해발굴 및 유전자 감식을 통한 유가족 찾기 사업 등은 시급히 해결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는 수행 주체의 역량 결집은 물론, 정치권과 행정당국의 자발적인 협조의식이 요구된다. 대부분 난제(難題)들의 바탕에는 법적인 문제와 더불어 미묘한 역학 관계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법적 논리를 꼬집으며 위화감을 조성하려 하거나 정치적 셈법으로 미봉책을 제시하려 하는 꼼수는 버리고 4·3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겨 해결책 마련에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민을 섬기는 정치권(政治圈)과 행정당국(行政當局)의 도리다. 

이렇듯 온 국민의 공감대와 함께 정치권과 행정당국 공동의 책임의식이 아우러질 때 진정한 제주4·3의 해결은 좀더 가까이 올 수 있을 것이다. 

때이른 대선정국으로 정치권이 법석이다. 국가의 수장을 뽑는 중대한 국사(國事)에 주권을 쥐고 있는 국민의 역할이 중대함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 반드시 현명한 선택으로 현명한 지도자가 선출돼야 하며 이번 19대 대선이 희망찬 대한민국 건설의 새로운 교두보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덧붙여 그 새로운 지도자가 제주4·3에 대해서 혜안(慧眼)의 역사의식을 가지고 진상규명을 위해 발벗고 나설 수 있는 군자(君子)이기를 바란다.

10년이면 변한다는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했기에 상당한 세월이 흘러 버렸다. 그 긴 세월동안 이뤄놓은 것이 턱없이 미약함에 4·3영령들께 죄스러운 마음 감출 길이 없다. 거친오름 기슭의 저 팽나무도 69년 전에는 나름 무성하게 기세등등했으련만, 세월의 무게를 못 이기고  쓸쓸히 나목(裸木)으로 서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좋은 생각이 좋은 일을 만들어낸다는 평범한 진리를 믿으며 좋은 생각들로 70주년을 맞이했으면 한다. 그래야 제주4·3의 봄도 좋은 느낌으로 찾아오리라.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