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 논설위원

이따금 해변이나 호숫가를 지날 때면 수면에 비친 아름다운 그림에 매료돼 가던 발길을 멈춘 채 넋 놓고 상념에 젖어볼 때가 있다. 거기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뭍의 풍경이 아름다우면 물 위의 풍경도 아름답고, 뭍의 풍경이 추하면 물 위의 풍경도 추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반영(反影)'이다. 그러기에 반영은 본체의 아바타(avatar)다. 아름다운 풍경의 반영은 마치 훌륭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본체와 황홀한 콘트라스트를 이루며 또 하나의 우주를 연출한다. 이래서 반영은 많은 사진가들이 좋아하는 촬영 포인트다.

호숫가라고 늘 반영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부는 날은 수면이 일렁거려 반영이 나타나지 않는다. 수면이 잔잔한 날이라도 호수가 깨끗하지 않으면 역시 반영은 일어나지 않는다. 수면을 뒤덮은 갖가지 오물들이 빛의 반사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시인 김동명은 제 마음을 아름답고 잔잔한 호수라 노래했다. 그렇다. 내 마음이 잔잔한 호수의 수면처럼 평정을 이룰 때, 그 위에 비치는 반영 또한 아름다운 법이다. 

이처럼 물에 비치는 것은 비단 세상의 풍경만이 아니다. 성서는 물가에 서서 몸을 구부리면 내 얼굴이 비치듯, 사람의 마음도 서로에게 비친다고 말한다. 그렇다. 사람들은 본체를 확인할 수 없을 때도 반영을 보며 본체를 유추하고 상상을 할 수 있다. 마음이 어두운 사람들은 흔히들 자기의 그런 마음을 다른 사람들은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나 보다. 착각이다. 자신은 남의 속을 들여다보면서 왜 남들은 나를 들여다 볼 수 없으리라고 여기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의 아바타는 과연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일까, 아니면 일그러지고 악취 풍기는 시궁창일까.  

반영은 이처럼 뭍과 물이 만나야만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다. 호숫가가 없는 뭍에서만도 반영은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그림자'다. 세상의 사물도 이처럼 자기 모습을 반영으로 비치고 그림자로 남기거늘, 인간이야 두 말 할 일인가. 우리가 그분들의 본체를 만나 본 적이 없는 수많은 성현들, 그분들의 삶의 향기는 이처럼 남기고 간 반영, 곧 그림자의 탐색을 통해서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곧 독서와 여행이 아닐까 싶다.  

본체로든 반영으로든 또는 실물로든 그림자로든, 본질은 현상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현상은 바로 본질의 아바타이다. 세상엔 감춰질 것도 없고 드러나지 않을 것도 없기에, 모든 것은 어떤 형태로든 다 밝혀지게 마련인데, 한세상 살며 숨기고 감춰야 할 것들이 많은 사람들이 적지만도 않은가 보다. 그런데 고작 나도 아는 이 소박하고 마땅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왜 모르는지 궁금하다. 차라리 측은하고 안타깝다.

본질을 드러내는 현상 중에 더 이상 정교할 수 없는 아바타는 바로 '거울'이다. 그대 정녕 옷깃을 여미고 거울 앞에 서보시라. 그토록 잘났다고 뽐내던 내 얼굴은 별반 잘나지 못했으며, 그토록 못났다고 기죽던 내 얼굴도 그리 못나진 않았음을 알게 되리라. 결코 숨길 수 없고 감출 수 없는 진실 때문에 저도 고생 남도 고생, 이래저래 불쌍한 사람들이 있음을 본다.  

진실한 자만이 정직한 자이며, 정직한 자만이 성실하게 사는 법이다. 법 모르는 소시민은 한낱 신호위반에도 가슴이 콩닥거리는데, 법 잘 아는 아무개 씨들은 온 개천을 흙탕물로 만들고도 법망을 미꾸라지마냥 징그럽게 잘도 빠져나간다. 그런 현실 앞에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러나 나 같은 소시민들은 결코 저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엄동설한에도 따끈한 아랫목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행복이며 이 행복이 곧 자유 아니던가. 진실 앞에 정녕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행복하고 아름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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