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숙 화가·논설위원

제주4·3미술제가 원도심에서도 이뤄지고 있는데 참여작가로서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 사는 집의 밖거리 공간과 마당을 정비해 집을 매개로 기억되는 이야기들을 영상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콘셉트의 작품이다. 

전시 주제인 '회향(回向)'은 25년간 떠나있다가 다시 돌아와 살고있는 옛 집에 대한 얘기를 담아내기에 알맞았다. 전시를 계기로 옛 사진들을 보다보니 당시의 헤어스타일, 복장, 배경에서 보여지는 시대 상황들이 고스란히 읽혀졌다. 처음에는 5분정도의 분량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들을 담다보니 10분 분량이 돼버렸다. 50여년이 다 돼가는 집에는 축적된 시간만큼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숱한 이야기를 간직한 원도심에 묻혀진 이야기들도 원도심재생을 계기로 되살아날 듯 싶다. 원도심재생에 관한 논의는 일찌감치 돼왔고 토건보다는 문화적 접근이라는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최근 관덕정광장의 복원사업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주민간의 갈등상황을 보면서는 소통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음이 읽혀졌다. 

주민설명회에 가서 이미 계획된 청사진 속에 자신들의 역사가 사라져버린 모습을 본 주민들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역사기록 속 모관을 재현하기 위해 지금 살고있고 앞으로도 떠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의 역사를 훼손하는 것은 정당했는가. 다른 건 몰라도 역사와 문화를 재생한다는 원도심의 재생은 좀더 다른 방식을 취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는 주민과의 소통과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도시재생대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을 불러서 듣는 국내·외 성공사례들은 주민주도형이거나 주민참여형이고 전문가들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도 주민, 소통, 참여, 스토리, 역사, 문화 등이다. 제주형 원도심재생이 주민주도형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할까. 주민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게한 뒤 그들 스스로가 어떻게 바꿔가야 하는지를 서로 이야기할 때, 그 때 전문가의 조언과 방향제시는 좀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아래로부터 차근차근 진행될 때 제주의 원도심만이 가지고 있는 과거와 현재가 새로운 미래를 향해가는 제주형 원도심이 되지 않을까.

소통의 시작은 사업을 주민들에게 낱낱이 알려주는 일이다. 4년 임기로 지역을 대표해 일할 사람을 뽑는데도 공약이 들어있는 인쇄물을 집집마다 돌리는데, 한 지역의 현재와 미래를 바꿔나갈 거대한 사업을 시행하는데 지역주민들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인쇄물을 배부하면 어떨까. 요즘사람들 사는데 바빠서 지역이 돌아가는 데 관심을 주지 않는다면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부터가 이 사업의 시작이어야 하지 않을까.

원도심 주간 스트리트 매거진을 만들어 원도심에서 이뤄지는 문화행사, 깜짝이벤트, 버스킹, 맛집소식을 알리고, 동문시장, 서문시장, 지하상가 등 지역 상권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원도심에서 터줏대감처럼 토박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볼 수 있게 하는 건 어떨까. 이는 원도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공동체의식 및 문화의 간접체험을, 관광객들에게는 원도심에 대한 정보제공과 이곳의 역사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콘크리트나 철제빔으로 만들어지는 토건의 공간들보다는 문화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공간이 아닐까. 여기에 국내·외의 편집, 디자인 전문가의 조언이 들어간 고품격 잡지라면 우리들의 미적 감각까지 업그레이드 될 것 같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