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8. 군영등록

왕·귀족 아닌 병사들 이야기…전세계적인 희귀 기록물
범죄·자연재해 등 일상 구체적 묘사…자료 접근성 과제

'군영등록'은 장수나 영웅이 아닌 민초(병사)의 기록으로 애민과 소통으로 일군 공존의 시대정신과 열악한 환경과 처지를 극복해가는 역동성을 품고 있다. 군영등록의 의미를 되새기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과정을 살펴 제주4·3의 미래를 모색한다

△군영등록이란

'군영(軍營)'은 임진왜란과 명·청 교체기 등의 동아시아 국제 정세 변화 속 국가 위기 대처를 위해 새롭게 탄생한 중앙 군대다. 전쟁 후에는 국왕 호위와 도성 방어를 전담했다. 급료를 받는 직업군병의 탄생은 조선왕조의 군제 시스템의 변화를 이끈 전환점이다.

'등록(謄錄)'은 말 그대로 '베껴서 기록한다'는 의미다. 이는 조선왕조만의 독특한 공문서 보존방식으로 각 관청마다 생산된 공문서들을 낱낱이 베껴서 일지형식의 책자로 만든 문서철이다.

군영등록은 각 군영에서 생산한 등록으로 훈련도감과 어영청, 금위영, 어영청, 수어청, 총융청 등의 등록이 주축이 된다.

군사 기밀사항까지도 숨기지 않고 300년간(1625~1894) 지속적으로 기록·보존한 문서철이어서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독보적인 기록물이다.

군영등록은 국내·외 유일본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569책,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120책 등 모두 689책이라는 방대한 분량이 소장돼 있다.

△군영등록의 가치

군영등록은 다양한 가치를 갖는다.

우선 기록유산적 가치를 보면 군영등록은 300년간 지속된 군영 일상 업무기록이다. 군영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설립돼 조선왕조의 군제 시스템뿐 아니라 사회·경제·문화의 동인이 됐다. 군영등록은 장구한 시간 속의 변화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특히 역사 그늘에 가려졌던 군병 집단이 새로운 한양 주민으로 살아간 치열한 삶의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 군영등록은 국정기록에서 전혀 접할 수 없는 군병과 하층민의 삶을 깊이 있게 기록했다.

또 300년 동안 변모해간 한양 기록이기도 하다. 도성에서의 군영과 군병 기록은 17~19세기 국왕으로부터 백성까지 공존했던 한양의 지리·문화 지형도 변화 양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세계사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군영은 전쟁을 위해 설립됐으나 전란 이후에는 도성의 범죄예방과 화재, 호환(虎患), 청계천 범람 등의 자연재해로부터의 민생을 지키는 것이 주임무가 된다. 군영등록은 한마디로 조선 후기 사회의 전쟁·범죄·자연재해로부터 인간 보호를 실천한 기록인 것이다.

조선 왕조 최초 군영인 훈련도감은 조총을 사용하는 포수를 주력군으로 했다. 국가에서는 정책적으로 서양의 귀화인과 표류인을 군영의 교관으로 삼아 총포 생산과 조총 다루는 법 등을 가르치게 했다. 군영은 서양 과학기술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곳으로 동서 문화 교류의 장이 됐다.

실제 훈국등록에는 박연(벨테브레이) 훈련도감 교관 근무와 하멜의 훈련도감 근무 등의 내용이 남아있다.

17~19세기 군영에서 근무한 직업군병 기록은 역사 속 약자의 일상을 조명할 수 있는 귀종한 자료이다. 300년이란 긴 시간 동안 군병이 주인공이 된 자료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군영등록은 직업군병의 일상생활, 불합리한 제도 개선을 추구한 민(民)의 의식 성장과 그들이 움직여간 사회 변화의 궤적이 잘 드러나 있다.

△군영등록의 기록유산 도전

이처럼 기록유산적·세계사적 가치를 지닌 군영등록은 '세계인의 기록'으로 남기 위해 도전에 나선다.

문화재청은 2017년 세계기록유산 등재 대상 기록물 선정을 위해 지난 2015년 7월20일부터 8월31일까지 대국민 공모를 실시한다. 공모 결과 모두 13건이 접수된다.

이어 2015년 11월17일 진행된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에서 군영등록은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 '4·19혁명 기록물' 등과 함께 후보 4건에 추천된다.

하지만 최종 기록유산 등재 대상에서는 제외되는 아픔을 겪는다. 공모 당시에는 군영등록에 대한 연구를 막 시작, 자체적으로도 자료 내용에 대한 이해와 연구, 홍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심사 과정에서도 '자료의 탈초와 번역 같은 자료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고 연구를 심화시켜 많은 사람들이 군영등록이 어떤 자료인지 알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듣는다.

△부족분 보완과 재도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소장 자료 569책의 이미지와 탈초본  DB를 구축하고 번역과 자료 내용을 소재로 한 스토리텔링을 집필해 출간을 준비하는 등 자료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또 군영등록 연구에 대한 심화의 노력으로 해외 한국학자들에게 자료를 제공해 공동 연구를 추진했으며 연구서 간행도 준비 중이다. 이는 자료 접근성 제고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에게 군영등록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홍보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군영등록은 앞서 실패 사례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 '세계인의 기록'에 다시 도전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는 아직 발걸음도 떼지 못한 제주4·3에 울림을 준다. 섬의 이야기, 제주인의 아픔으로만 남아있는 제주4·3이 세계인의 기록이 되기 위해서는 '확장성'이라는 과제가 남게 됐다.

4·3의 확장성 문제는 4·3 교육 활성화와 유사 사례와의 연대 강화 등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렵게 세상과 마주한 제주4·3이 전국화를 넘어 세계인의 기록으로 인정받을 때 제주는 진정한 평화와 인권의 섬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인터뷰] 원창애 장서각 왕실자료연구실 책임연구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기록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창애 장서각 왕실자료연구실 책임연구원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이산가족찾기와 같이 누구나 알고 있는 자료라면 등재 준비가 어렵지 않지만 등재하려는 자료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경우에는 홍보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같이 조언했다.

이어 "자료 홍보를 위해서는 자료 접근성을 높이고 연구를 통해서 자료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방법도 있으며 전시를 통해서 대중들이 직접 자료를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원 책임연구원은 "군영등록이 방대해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군대기록이라는 이유로 사료로서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 군영등록의 심화연구, 대중화를 통한 가치 홍보를 확산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 2015년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때는 '군영등록'에 대한 연구를 막 시작한 시점이라 자체적으로도 자료 내용에 대한 이해와 연구 그리고 홍보가 부족했다"며 "심사과정에서도 자료의 탈초와 번역과 같은 자료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고 연구를 심화시켜 많은 사람들이 '군영등록'이 어떠한 자료인지 알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군영등록 연구의 심화에 노력했다. 해외 한국학자들에게 자료를 제공해 공동 연구를 추진했으며 연구서 간행도 준비 중"이라며 "자료 접근성 제고와 심화 연구를 통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에게 군영등록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홍보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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