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만들어진 법률 제1호는 '정부조직법'이다. 그런데 구한말 근대적 의미의 사법제도가 도입됐던 것은 1894년 갑오경장 이후의 일로서 다음 해인 1895년 4월25일 법률 제1호로 '재판소구성법'이 공포됨으로써 본격화됐다. 2003년 이후 우리가 위 날을 '법의 날'로 기념하는 이유다. 

법의 날을 일부러 기념할 이유는 없다. 아마도 법질서를 잘 지켜서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이 날을 기념하자는 것인데, 우리는 이미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4월25일이 법의 날이든 아니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사실 인간의 일생은 태어나면서 출생신고를 하고 죽으면서 사망신고를 하듯 법으로 시작하고 법으로 끝나지 않는가. 사람은 태어나면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고,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법을 거스르면서 살 수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처벌을 받고 일정한 권리가 박탈되기도 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 있는 곳에 법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회생활은 곧 법 생활이다.

어떤 사람들은 법은 부자나 힘센 사람들의 편이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의무만을 강요하는 '가진 자의 논리'라고 봐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또 법과 질서를 지키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면서 편법이나 탈법을 부추기기도 한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이해대립과 갈등이 생길 때 자신에게 유리할 것 같으면 법대로 하자고 하면서도 반대의 경우 그게 무슨 법이냐고 하면서 법을 무시하기도 한다.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이 모든 것은 시민의식의 부족에 따른 것이다. 자기 이익과 권리만을 우선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권리는 애써 외면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권리가 있으면 반드시 그에 따른 의무가 있게 마련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 법인 셈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의 이기적 권리의식은 어쩌면 법 집행의 공정성과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면서 일반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하는 위정자나 공직자들에게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것 같다. 

일찍이 영국의 자유계몽주의 정치철학자인 존 로크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으려면 법과 정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갈등과 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법밖에 없다. 흔히들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라고 말하지만 결국 주먹을 다스리는 것은 법이다. 그런데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사람과 권력이 있어야만 그 법은 효과를 발휘한다. 이를 가리켜 '법의 지배'(rule of law) 또는 '법치주의'라고 한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규범을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이 존중하고 지키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를 다할 때 법치주의가 완성되는 법이다. 그것이 예전에 우리가 말하던 "질서는 자유롭고 편하고 아름다운 것"과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하고, 같은 조 제2항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또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은 다 법을 빠져나간다고. 그러면 안 되지만 그건 또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 법은 아무 죄가 없다. 우리가 이른바 '갑질'을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른 건 참아도 그건 참지 말아야 한다. 갑질하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 법의 지배가 확립되는 올바른 사회다. 

혹시 오늘 법의 날에도 "나는 잘났어,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나한테는 어림도 없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설마 있을까.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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