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 교장·논설위원

문재인 새 정부가 출범했다. 직원 식당에서 줄 서서 밥 먹고, 보좌관들과 함께 커피 마시는 모습은 취임초의 신선함을 보여준다. 직전 대통령이 워낙 혼자서만 식사를 하고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는 스타일이어서 더욱 돋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상황판까지 설치한 것은 퍽이나 의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일자리를 직접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기업경영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창업을 지원해주며 규제를 풀어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인천공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약속한 것도 좋은 일이긴 한데, 사기업(私企業) 쪽에서 같은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걱정된다. "천천히, 단계적으로"라는 말을 함께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비정규직의 94.4%가 중소기업에 근무(지난해 8월 기준)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였던 단원고 고(故) 이지혜·김초원 교사를 순직 인정토록 지시한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대통령이 직접 하지 말고 관계부처의 장관으로 하여금 검토해서 발표하도록 하는 게 더 돋보이지 않을까. 모든 것을 대통령이 친히 하려고 할 때 권력이 집중되면서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대통령의 눈치만을 보게 될 터이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단행한 정부인사 모두에 손뼉을 칠 수는 없을 것 같다. 가령 통진당 해산과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때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냈던 분을 헌재를 대표하는 재판소장으로 지명한 것은 지나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헌재재판관의 일원으로서야 충분하지만.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인사에 감동과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게 있다. 향후 우리나라의 경제방향을 기획하고 책임질 경제부총리에 상고(商高)를 나오고 은행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자력으로 야간대학을 나온 사람을 지명한 것. 문 대통령은 그를 지명하면서 "저와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청계천 소년가장'에서 출발해 누구보다 서민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는 분"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1%의 지지를 얻어서 대통령이 됐다. 국민화합을 말했지만 '적폐 청산'도 약속했다. 서로 모순될 수 있는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해낼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폐기한다고 했다. 이런 일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바로 기정사실화해버리는 모습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교과서의 '국정'은 민주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논란이 돼온 교과서 문제를 푸는 방식은 '폐기'만이 능사가 아니다. 검정과 국정을 혼용하되 선택은 일선학교에 맡겨도 되는 일 아닌가. 

대통령께서는 좀 더 멀리 내다봐 주셨으면 좋겠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약속은 당장에는 많은 취업준비생들에게 환영받을 일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그들이 역경을 발판삼아 머리를 짜내고 또 궁리하면서 세계를 앞서나갈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이끌어주는 일에 더 힘써주길 바라고 싶다.  

문 대통령은 잇따라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북한의 김정은을 상대해야 한다. 치졸한 '사드보복'을 해대는 중국과 껄끄러운 갈등상대인 일본도 상대해야 한다. 사드비용을 내라, 한·미FTA를 재협상하거나 폐기하겠다는 미국의 '럭비공' 트럼프는 또 언제 어떻게 압박을 해올지 모른다. 

지금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내다보고 나아가야 할 무한경쟁시대, 4차 산업혁명시대를 헤쳐 나가야 할 가장 긴박한 시기를 맞고 있다. 우리는 마음과 힘을 모은다면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국민이다. 문 대통령이 부디 국민을 하나로 화합시키면서,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로서 열정을 불러 모으는 국정을 펴주실 것을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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