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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뫼백일장 중학교부 산문 부문 최우수] 슬픔의 단위서귀포여자중학교 2학년 김아린
김승지 기자
입력 2017-06-05 (월) 18:01:44 | 승인 2017-06-05 (월) 18:03:40 | 최종수정 2017-06-05 (월) 18:03:40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슬픔은 쌓여간다고, 햇볕에 말린 침대 시트 위에도, 지우개 가루가 아직 남아 있는 책상 위에도, 손때 묻은 책들 사이에도 슬픔은 쌓여간다."고. 이 구절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구절이라며 나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셨고,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눈빛은 영롱하게 갈색빛을 비추며 나를 눈물 짓게 만들었다. 이 일은 내가 중학교 1학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 내가 왜 눈물을 머금었는지의 이유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갑자기 '나이'라고 해서 이 일이 생각난 이유는 뭘까? 잠깐 생각해 보니 알 수 있었다. 난 아버지의 슬픔이 얼마나 쌓였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 상냥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하고. 나는 아버지의 슬픔을 가슴 깊은 곳에서 먼저 느낀 탓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온 것이다. 아빠는 미소를 지으시곤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난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기억은 마치 하나의 비디오처럼 가끔 꿈속에서 재생된다. 반복되고 반복된다.

 내가 15년 동안 살면서 쌓인 슬픔은 얼마나 될까? 내 책장 무게 만큼일까, 아니면 언니의 무거운 가방 무게 만큼일까? 아니 그보다 더 될는지 모르겠다. 나이와 슬픔은 비례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지나갈수록 슬픔은 내 옆에 먼지처럼 쌓여간다.그 먼지는 털어내려 해고 털어낼 수가 없어서 결국 방치해 둔다. 그렇기 때문에 병이 생기는 거겠지.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꺼내보면 하나 같이 슬픔이 함께한다. 내 슬픔, 15년 동안의 슬픔들, 난 그것을 추억이라 믿는다.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창 밖을 보면 전깃줄에 걸려있는 동그란 단ㄹ. 벚꽃이 떨어지는 게 꼭 눈 같다고 생각했던 4월의 어느 봄날, 영어 학원이 끝나고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고백했던 일, 하굣길에 봤던 개나리, 가족들과 함께였던 행복한 시간들, 언니가 만든 잼이 맛없었지만 억지로 웃으며 맛있었다고 한 일, 모두 의미 있고 기분이 좋아지는 슬픔이다. 내가 좋아하는 쇼팽의 곡에 마치 이 추억들이 물결치는 것 같다. 살랑살랑. 정말 마음이 따뜻해진다. 슬픔이 꼭 눈물을 지을 일인 걸까. 아버지의 슬픔은 얼마만큼일까. 아버지도 나와 함께 지냈던 슬픔들을 의미 있게 가슴에 보관해 주실까. 가끔 시간이 날 때 꺼내좌 주실까. 그랬으면 좋겠다.

 난 상상을 했다. 내 비디오에서 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가는 그 장면 전부터 다시 상상을 시작한다. 역시 이 장면에서 난 울고 있다. 나는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그리고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빠의 슬픔을 내가 헤아리진 못하지만 분명 즐거운 일이겠지? 그걸 몰라주고 먼저 울어버려서 미안해. ?" 이제 됐다.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의 의미를 알았으니 이제 된 것이다. 분명 아버지도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잊을 거니?"라고. 설마 잊을 리가 있을까. 아직 빛이 바래지도 않았다.
 아빠는 이 말에 많은 의미를 담았다. "난 누군가의 마음에 살고 있을까, 네 마음에 내가 있니?"라고. 그리고 난 아마 웃으면서 대답할 거다. "아빠는 내 마음 속에 VVV.I.P 자리에 있어!"라고
 아버지는 나에게 포기하는 법보다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워 주셨고, 말싸움 잘 하는 법보다 설득하는 법을 먼저 가르쳐 준 분이다. 그 은혜를 모르고 아버지와 함께한 이 추억들을 버린다고? 그럴 일은 없다. 아버지가 나에게 해 준 말은 하나하나 슬픔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떨어져 있다. 그래서 요즘 평소보다 더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의 따뜻한 위로 한 마디가 너무 그립다. 아빠와 함께한 추억은 이미 지나간 한 순간의 추억이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추억은 나이를 먹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잘 보관되어 있다. 만약 아버지가 나와의 추억을 잊으셨다 하더라도, 난 괜찮다. 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 15년의 시간을 믿을 거다. 이 글을 쓰면서 옆에 두었던 초콜릿의 껍데기만 남아 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버렸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나이가 드는 것은 그만큼 슬픈 추억들이 많은 것이라고, 그리고 그 추억들은 나이가 들지 않고 오래오래 내 옆에서 나를 따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슬픔이 얼마나 쌓였는지가 아마도 그게 내 나이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슬픔이 얼마나 쌓였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나이에 연연하는 것이 아닐까? 난 슬픔의 양을 나이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나이는 그저 슬픔의 양을 세는 모호한 단위일 뿐, 진짜 슬픔의 양을 세는 건 나이가 아닌 마음인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 1분 전에도 나는 나이를 먹었고 후에 난 나이를 먹을 것이다. 그 순간순간 생기는 슬픔을 난 기억한다. 정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이 교실에서 나는 특유의 공기, 옆 친구의 연필 소리, 내 손목시계 소리 전부. 아버지에게 이 마음이 닿을까, 닿았으면 좋겠다.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햇빛을 받으며 나는 이만 글을 마친다.


김승지 기자  seungji07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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