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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한뫼 문학백일장 최우수작한뫼문학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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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06 (화) 09:11:45 | 승인 2017-06-06 (화) 09:16:17 | 최종수정 2017-06-06 (화) 09:16:17

한뫼문학백일장은 창작 활동에 관심이 있는 제주지역 학생들의 문예 특기 능력과 창작 의욕을 북돋아주기 위해 지난 1990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한뫼문학백일장은 제주중등국어교육연구회 주최, 제주도교육청·제민일보사 후원으로 매년 진행되면서 제주지역 문인을 배출하는 문학인의 산실로 톡톡히 역할하고 있다.

■ 고등학교부 산문 최우수
마지막 편지

그 해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산천초목이 푸르게 물들고, 새하얀 포말이 부서지던 그 때, 당신은 소년을 남자로 만드셨고, 저는 당신을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짧았던, 그러나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저와 당신의 여름은 추억의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저의 심장 곳곳에 박혀있습니다. 저는, 저는 기억합니다. 노랗게 만발한 유채꽃 사이를 지나가던 그대의 모습을. 드넓은 대양을 두려워하지 않고 멀리까지 나아가던 그대의 용감함을. 높디높은 창공을 바라보던 그대의 호기심을. 그 모든 것이 저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들이었습니다. 아아, 당신과 더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만약 내가 그때 라디오를 듣지 않았더라면, 아니, 제 발로 군부대로 걸어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당신과 함께일 텐데.
<중략>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는 느낌을 처음 받은 것은 이북의 어느 마을에서였습니다. 내가 속한 소대는 마을을 수색하고 있었습니다. 적군이 숨기고 간 무기나 식량, 그리고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문서 등을 찾기 위해서였죠. 첫 번째 초가를 뒤진 다음 두 번째 초가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어린 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대여섯 명 정도가 초가집 안으로 들어갔기에 방 안은 상당히 비좁았습니다. 병사들은 하도 거지꼴이어서 사내인지 계집인지 구별이 어려운 아이를 보자 총구를 들이대고 경계했습니다. 아이는 두려운 듯 뒷짐을 진 채 뒷걸음질 쳤고요. 이를 말린 것은 소대장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 무슨 짓이냐며 소대원들에게 총구를 내릴 것을 지시했고, 아이에게 미소 지으며 다가갔습니다. 불쌍한 소대장, 그는 가슴팍의 주머니에서 미제 초콜릿을 꺼내들었지만, 아이는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수류탄을 꺼내는 것으로 보답했습니다. 소대장은 이 세상에 군화 한 짝과 철모 하나만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대구에서 온 형식이와 경주에서 온 휘수도 그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그 다음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분노한 우리 소대는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소대장과 형식이, 휘수는 저승길 동무가 많이 생겼다고 좋아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노와 증오, 살해와 복수로 점철된 끔찍한 폐허를 뒤로 하고, 우리는 북으로 올라갔습니다. 더욱 끔찍한 것은 비슷한 일이 수차례 더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저는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 손에 무고한 이들의 피를 묻혔고, 아아 그 죗값은 가볍지 않겠지요.
<중략>
북괴군이나 중공군도 아닌 국군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되자 분노한 저는 그의 권총을 뺏어 그를 쏘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머리에 구멍이 뚫려 힘없이 누워있는 소대장의 시체와 그 옆에 주저앉아있던 저를 발견한 중대장의 얼굴, 저를 끌고 가던 헌병대의 얼굴과 끌려가던 나를 멍하니 지켜보던 부대원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저는 며칠 전 사형을 선고받고 차디찬 감방 안에 앉아있습니다. 그대가 보내준 엽서는 잘 받았습니다. 고향에서 당신과 함께 봄의 아름다운 꽃들과 바다, 그리고 사람들을 정말 오래간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특히 마지막 사진, 당신이 고운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자 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당신을 보지 못하고, 이것이 제가 당신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라고 생각하니 또 눈시울이 뜨거워져 옵니다. 
쇠창살 너머로 밖을 보니 새순이 피고 있습니다. 겨울이 물러간 모양입니다. 고향 마을에도 봄이 왔겠지요. 하지만 저의 마음에는 차가운 눈보라만이 불고 있습니다. 아, 저 멀리서 교도관의 발소리가 들립니다. 그의 표정만큼이나 차가운 발소리입니다. 아직 하고 싶은 말, 전하고 싶은 마음이 많지만 이제 그만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그 모든 시간들은 저의 인생에서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교도관이 이 편지를 당신에게 부쳐줄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써 보았습니다. 봉투 안에 당신이 지금까지 나에게 부친 편지와 엽서를 동봉합니다. 삶이 끝나는 이 순간에, 당신을 기억합니다. 


■ 중학교부 산문 최우수
슬픔의 단위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슬픔은 쌓여간다고, 햇볕에 말린 침대 시트 위에도, 지우개 가루가 아직 남아 있는 책상 위에도, 손때 묻은 책들 사이에도 슬픔은 쌓여간다."고. 이 구절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구절이라며 나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셨고,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눈빛은 영롱하게 갈색빛을 비추며 나를 눈물 짓게 만들었다. 이 일은 내가 중학교 1학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내가 왜 눈물을 머금었는지의 이유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갑자기 '나이'라고 해서 이 일이 생각난 이유는 뭘까? 잠깐 생각해 보니 알 수 있었다. 난 아버지의 슬픔이 얼마나 쌓였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 상냥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하고. 나는 아버지의 슬픔을 가슴 깊은 곳에서 먼저 느낀 탓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온 것이다. 아빠는 미소를 지으시곤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난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기억은 마치 하나의 비디오처럼 가끔 꿈속에서 재생된다. 반복되고 반복된다.
<중략>
벚꽃이 떨어지는 게 꼭 눈 같다고 생각했던 4월의 어느 봄날, 영어 학원이 끝나고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고백했던 일, 하굣길에 봤던 개나리, 가족들과 함께였던 행복한 시간들, 언니가 만든 잼이 맛없었지만 억지로 웃으며 맛있었다고 한 일, 모두 의미 있고 기분이 좋아지는 슬픔이다. 내가 좋아하는 쇼팽의 곡에 마치 이 추억들이 물결치는 것 같다. 살랑살랑. 정말 마음이 따뜻해진다. 슬픔이 꼭 눈물을 지을 일인 걸까. 아버지의 슬픔은 얼마만큼일까. 아버지도 나와 함께 지냈던 슬픔들을 의미 있게 가슴에 보관해 주실까. 가끔 시간이 날 때 꺼내좌 주실까. 그랬으면 좋겠다.
난 상상을 했다. 내 비디오에서 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가는 그 장면 전부터 다시 상상을 시작한다. 역시 이 장면에서 난 울고 있다. 나는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그리고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빠의 슬픔을 내가 헤아리진 못하지만 분명 즐거운 일이겠지? 그걸 몰라주고 먼저 울어버려서 미안해?" 이제 됐다.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의 의미를 알았으니 이제 된 것이다.
<중략>
아버지는 나에게 포기하는 법보다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워 주셨고, 말싸움 잘 하는 법보다 설득하는 법을 먼저 가르쳐 준 분이다. 그 은혜를 모르고 아버지와 함께한 이 추억들을 버린다고? 그럴 일은 없다. 아버지가 나에게 해 준 말은 하나하나 슬픔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떨어져 있다. 그래서 요즘 평소보다 더 아버지 생각이 난다.
<중략>
나이가 드는 것은 그만큼 슬픈 추억들이 많은 것이라고, 그리고 그 추억들은 나이가 들지 않고 오래오래 내 옆에서 나를 따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슬픔이 얼마나 쌓였는지가 아마도 그게 내 나이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슬픔이 얼마나 쌓였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나이에 연연하는 것이 아닐까? 난 슬픔의 양을 나이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나이는 그저 슬픔의 양을 세는 모호한 단위일 뿐, 진짜 슬픔의 양을 세는 건 나이가 아닌 마음인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 1분 전에도 나는 나이를 먹었고 후에 난 나이를 먹을 것이다. 그 순간순간 생기는 슬픔을 난 기억한다. 정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이 교실에서 나는 특유의 공기, 옆 친구의 연필 소리, 내 손목시계 소리 전부. 아버지에게 이 마음이 닿을까, 닿았으면 좋겠다.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햇빛을 받으며 나는 이만 글을 마친다.


■ 고등학교부 운문 최우수
삶 속의 먼지

탄생은 나의 죄명이다. 단 한 번도 원하지 않았지만 타인에 의해 부여된 목숨과 이름. 나는 2억분의 1의 확률로 실패했다. 삶은 고문이었고, 고해성사를 하며 온 방 안의 먼지를 들이마셔 마음으로 이끄는 일은 나에게 주어졌던 형벌이었다. 쌓인 먼지들은 마음을 자주 썩게 만들었는데, 그렇게 된 마음들은 사라지는 법을 몰랐다.

세상에게서 등을 돌리고 잠을 청할 때면 이따금씩 먼지의 형상들이 눈에 어렸다.
어떤 날은 어머니의 모습이었고, 또 다른 날은 오랜 친구였지만 대체로는 나를 아프게 했던 것들이었다.
심해어처럼 바다 깊은 곳에 묶여 있던 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준 건 그들의 애정이었지만 그건 내가 미워지자 나를 나락으로 밀어 버리거나 먼지가 되어 새벽을 망가지게 했다.
그런 속절없는 고통의 굴레 속에서 나는 나를 버렸고, 내가 버린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 평생을 먼지 속에서 움츠렸다.

먼지는 나를 괴롭게 하다가 살고 싶게 하다가 유서를 쓰고 싶게 하다가
어느 날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가 뜬금없이 나타나 마음을 움켜쥐고 쓰리게 하다가 그렇게 평생을 삶 속에서 부유했다.


■ 중학교부 운문 최우수
이중인격

넌 너무 달콤한 향이 나

새벽에 맡는 꽃향기처럼 달콤해
입 안 가득 문 사탕 같아

넌 너무 지독한 향이 나
처음엔 좋다가도 금방 질려
아끼다가 녹아버린 사탕 같아

향기가 저버린 너는
사탕의 인공착향료 같은 너는
너가 아니야

너는 무슨 맛이니
너만의 맛을 머금고 살아
그 맛으로 세상을 물들여

꽃의 향기가 다 다른 것처럼
사탕의 맛이 다 다른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것처럼

너에게 향수는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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