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

오키나와 섬사람들은 일본에 편입된 지 1세기가 넘었지만, 아직도 그들의 언어, 풍습, 음식, 술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 일본인이냐 오키나와인이냐고 물으면 오키나와인이라고 대답한다. 타이완 섬사람들은 중국 대륙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독립국가로 남기를 바란다. 그들은 2·28사건을 대륙에 의한 원주민 학살로 규정하며,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후보 차이잉원을 새 총통으로 선출했다. 1950년대 이탈리아의 섬 시칠리아 내륙, 사르데냐의 산악지대 사람들은 이탈리아라는 나라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과연 현재의 제주섬 사람들은 어떨까. 1901년 '이재수란' 당시 제주사람들은 국가민족의식으로서 서구 '제국주의'에 저항했을까. 4·3사건 당시 제주민들은 통일된 한반도를 꿈꾸며 5·10선거를 거부하는 민족운동을 전개했던 것일까. 그들은 외래 봉세관, 서양종교, 서북청년단, '육지' 경찰의 비리와 횡포에 저항했던 '원주민'들이 아니었을까. 그들에게 '상상의 공동체'인 국가와 민족을 대입시키는 것은 후대 이념가나 학자들의 덧칠은 아닌 것인지 곰곰이 되씹어 볼일이다.

근·현대를 거슬러 올라가 탐라 멸망 이래 전개된 제주민의 저항운동에 대한 인식은 한국사의 그늘 아래 가둬져 있다. 고려시대 양수의 난, 삼별초 입도 때 연합저항, 목호란, 조선시대 문충기란, 양제해란, 방성칠란 등을 그저 목민관과 징세 저항 정도로 인식해서는 민란 속에 담겨있는 제주민 저항의 에너지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 속에는 탐라 사람들의 자치·자결을 빼앗아 가버린 외래의 폭압에 저항한 근원적인 힘이 잠재해 있다. 제주 역사문화의 특징인 공동체적 자존(自尊·自存)의 장기지속적인 문화 유전자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어려워서 제주섬을 찾은 외래 이주민들에게는 관용과 포용의 따뜻한 섬이지만, 원주민을 무시하고 힘으로 섬을 짓누르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저항정신이 제주문화의 특징인 것이다. 문제는 포용성과 배타성을 분별하지 못하고 섬사람들을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라고 몰아붙인 중앙과 육지, 섬 안의 알량한 지식인들의 그릇된 인식이다.

그들에게 시칠리아와 사르데냐 섬사람들을 대면시키면 어떨까 싶다. 2차대전 직후 이탈리아 중앙정부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해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문화적 특별자치의 섬이다. 강력한 저항과 민란의 전통을 품고 있는 마피아의 고향 시칠리아, 1980년대까지 국가주도적인 군사기지 설치, 국립공원 지정 등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자치·자결권을 유지하고 있는 사르데냐. 이들 섬 모두 헌법으로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으며, 거의 준독립국에 가까운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제주도의 현실은 어떤가. 2006년 특별자치도가 선포됐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자치·자결권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국제자유도시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보완 수단으로서 특별자치이고,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에 의한 국가 주도적 개발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우리가 합의해서 제기한 특별자치도가 아니라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하사품 던지듯이 내려준 시혜에 머물러 있다. 우리대로 구상하고 우리가 싸워서 만들어낸 특별자치가 아니므로 그 근원적 힘은 미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랜 주민저항의 역사 전통, 최근 난개발에 저항했던 주민운동 등에 비춰보면 현재 제주도의 발전 방향은 너무도 중앙 타협적이며 비굴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우리식으로 큰 틀을 만든 위에 고도의 자치 지위를 확보하는 헌법 개정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역량을 강화시키겠다는 문재인 민주정부를 향해 배짱있게 고도의 자치섬을 촉구하고 지향해야 할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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