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범 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행정학 박사

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막바지로 향해가는데 암초를 만났다. 이주인구 증가로 불가피하게 보이던 도의원 정수 확대 논의도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기대선으로 정권을 잡은 새 정부의 강력한 지방분권 의지와 제주 출신 3명의 여당 국회의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은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추진하고 있으니 제주지역의 행정체제 개편 논의는 정부기조에 맞추고, 의원정수 확대도 민주당 의원들과 손발을 맞추는 것이 국회 통과에 유리하다는 제안 역시 솔깃하게 들릴지 모른다. 

지난 16일 AIIB 연차 총회 참석차 제주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도의 자치권한이 커져야만 제주도민에게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치권한이 커질 수 있도록 재검토해 명실상부 특별자치도가 되고, 다른 지역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진정한 자치와 분권을 국가 동력화하겠다는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찬동하고, 기대도 크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첫 삽을 떴다. 당시 민정수석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자치와 분권에 대한 구상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제주도만큼 훌륭한 곳은 없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후 행정 총량 증가에 비례해 엄청난 변화의 한복판을 걸어왔다. 시·군을 폐지했고, 7개 특별행정기관이 이관됐으며 4500여건이 넘는 정부사무도 이양됐다. 3조6000억원 정도 수준이던 도 예산이 5조원에 육박하는 추경예산을 도의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56만이던 인구는 70만을 내다보고 있으며, 관광객은 1500만명을 넘겨 2000만명을 대비해야 할 정도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중앙집권 회귀적 태도와 부처 간 이기주의, 지역 형평성 타령으로 허송세월하는 동안 '무늬만 특별자치도'라는 도민적 혹평에 직면해 있는 게 현주소다. 

특별자치도 추진과는 다르지만, 이명박 정부의 광역경제권 사업,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사업은 표면적으로는 지역의 내생적 발전을 추구한다면서 실상은 국가가 결정한 가치에 지방정책은 좌지우지 됐고 표류하기 일쑤였다. 

행정체제 개편과 도의원 정수 확대는 그동안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는 제왕적 도지사의 폐해, 풀뿌리 민주주의 퇴행에 대한 도민들의 학습된 문제의식이 표출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난 총선과 대선을 통해 상호작용했으며, 자기조직화 했다. 

물론 도의회가 유불리를 따지고 갈팡질팡하면서 선택 가능한 대안을 속 시원하게 제시하지 못했고, 도민 총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탓도 있는데 물색없는 대꾸냐고 논평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제주사회 스스로 대응논리와 방식을 일관되게 고민하면서 추진해온 것을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여당 소속이 된 국회의원들 코드를 맞추라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역대정부와 다를 것이 무엇이며, 누구를 위해 국회에 입성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제주도민은 그동안 해군기지든, 특별자치도든 국가 순응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또다시 제주출신 여당 국회의원들이 정부 일정에 맞추라는 주장은 도민적 고민을 몇 년 늦추라는 도 넘은 강권이다. 특별자치도의 미래를 통째로 정부 분권 논의 격랑 속에 떠넘기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다. 

개헌정국에서 전국의 지방분권 논의와 제주 행정체제 개편과 도의원 정수 확대 문제는 별 건이다. 국회의원들 스스로 다스리고, 권력을 나눈다는 자치와 분권에 대한 빈궁한 인식만 들킨 꼴이 아닐 수 없다. 정책추진의 정당성은 도민들로부터 나온다. 중요한 것은 도민들의 생각과 의지다.

세 명의 제주출신 여당 국회의원들은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 주밀하게 살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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