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제주여성인력개발센터 관장

"성평등이 모든 평등의 출발점이라는 마음으로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겠다. 성별이 아니라 능력과 열정으로 평가받는 나라를 만들겠다" 지금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다. 

일하는 여성이 늘고 지속적인 저출산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어느 정부에서든 일·가정 양립을 핵심과제로 꼽으며 수많은 정책을 쏟아냈지만 이중 육아휴직을 제외한 대부분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제도다. 

이 때문에 현행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이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에서 업무 과부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직장생활에 가사·육아부담까지 이중고를 겪는 워킹맘의 고통은 상당하다.

최근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아빠육아휴직이 전체 육아 휴직자의 10%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서울, 경기)에 절반이상이 집중됐고 제주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13.3 %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 일·가정양립 지표' 에 따르면 부부가 함께 살고 있는 가구 중 실제로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는 부부는 20%에도 못 미쳤다. 남편의 경우 17.8%가, 부인은 17.7%가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나타났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워킹맘들은 모성을 보호받을 수 있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정비된 제도를 눈치보지 않고 잘 활용할 수 있는 행복한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아빠가 빠진 일·가정양립 지원제도 안에서는 워킹맘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 '아빠 양육'이 현실화되지 않고 지금처럼 여성에게만 가사와 양육 책임이 편중된다면 여성경력단절 예방은 물론 출산율 회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 법과 제도가 마련돼도 현실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실현하는 데에는 많은 장애들이 있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가족 시간 확보의 어려움, 가족영역에서 여성의 전통적인 돌봄 역할 부과로 워킹맘은 물론 남성근로자 또한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현실에 여전히 처해 있는 것이다. 

정시퇴근, 유연근무제 등을 비롯한 일가정 양립 정책은 저출산 문제를 넘어서서 우리의 삶의 질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도 중요하지만,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관행이나 생각은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주어진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족을 위해 보내거나 자기 개발에 집중할 때 삶의 만족도나 직장에서의 생산성은 오히려 향상될 것이다.

제주도와 지역사회는 중앙의 기본적인 정책과 방향설정과 더불어 제주지역 근로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실질적인 정책의 실현이 이뤄지도록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지역정책을 통해 지역단위의 섬세하고 세밀한 수요자 중심의 일·가정 양립 정책을 세우고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가정 양립 전반에 걸쳐서 제도의 변화나 컨설팅, 관련 고충 상담 등이 이뤄져야 하는데 관련 정보를 어떤 기관에서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 기업이나 근로자들이 알기 어려운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인지와 함께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이와 함께 기업과 근로자 등 제주 지역사회 전체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동참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여성과 아이에게 투자하는 것은 시대적 당위가 아니라 현명한 대처인 것 같다. 여성과 아이가 행복해야 그 주변의 가족들이 모두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가정양립 지원정책이 워킹맘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적 정비와 더불어 지역사회 구성원의 인식 변화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때 양성평등과 더불어 여성들의 경력단절예방, 저출산 극복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