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논설위원

박물관과 미술관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질문을 가끔 받게 된다. 영어의 뮤지엄을 박물관 또는 미술관으로 번안해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혼돈되는 모양이다. 80년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애써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이 법을 만들기 위해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공청회가 몇 차례 열린것으로 기억하는데 박물관으로 통일할 것인가 미술관으로 분리해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비등했었다. 박물관에 관계된 이들이 박물관 진흥법이라고 해야 맞는다고 주장하는 반면 미술관 관계자들은 미술관을 박물관 속에 넣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결국 박물관 및 미술관으로 타협이 이루어졌다. 

박물관을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박물이란 개념 자체가 컬렉션의 집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미술도 그러한 집성 가운데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민속관계 유물의 집성을 민속박물관, 역사적 자료를 집성한 것을 역사박물관 하듯이 미술도 미술박물관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몇 군데 미술관이 미술박물관으로 명명하고 있는가 하면 북한은 조선미술박물관이라고 쓰고 있다. 

미술관계자들이 미술관을 주장한 것은 일종의 자존심과도 관계되지 않나 싶다. 미술관이란 말이 먼저 생겨났는데 왜 박물관 속에 들어가야 하는가이다. 뮤지엄의 어원이 미의 여신 뮤즈에게 귀중품을 봉납하는 신전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신에게 봉납한다는 의미로 피나코텍이란 명칭도 사용되는데 독일의 몇 군데 미술관이 피나코텍이라고 하고 있다.뮤지엄이란 통일된 명칭보다 독특한 의미를 지니는 느낌이다.

서양에서 사용하는 뮤지엄이란 우리처럼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유명한 파리의 루브르도 명칭은 뮤제 루브르이다. 영어로 하면 뮤지엄 루브르이다. 우리는 한결같이 루브르 박물관이라고 쓰고 있고 일본은 루브르 미술관이라고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어떤 것이 맞느냐는 별 의미가 없다. 내용물로 본다면 박물관일수도 있고 미술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비교적 분류개념이 철저하다고 할까. 국립중앙박물관은 내용으로 본다면 고고학적 유물과 미술사적 유물이 포괄되어 있다. 이를 미술관으로 명명한다면 많은 시비가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미술품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될 것이다. 

서양에서 뮤지엄이란 개념이 폭넓게 사용되고 있듯이 때때로 갤러리란 명칭을 미술관에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단번에 무슨 그런 무식한 말을 하는가 할 것이다. 실제로 앞선 공청회 때도 이에 대한 시비가 없자 않았다. 런던에도 내셔널 갤러리가 있고 워싱턴에도 내셔널 갤러리가 있다. 국립미술관을 그렇게 쓰고 있다. 갤러리는 화랑 뿐 아니라 진열장, 전시장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좁은 의미로는 화랑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전시장이다. 런던의 유명한 미술관인 테이트 갤러리도 테이트 화랑이라 하지 않고 테이트 미술관이라고 부른다.

뮤지엄이니 갤러리니 하는 명칭이 근대 이후 서양에서 들어온 개념이기 때문에 그 사용에서도 지나치게 속박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서양 사람들이 사용한 것처럼 유연성을 가지면서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도 어디엔가 꼭 메여 전혀 유연성이 없어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 아니면 저것, 흑 아니면 백 하듯이 단순 논리에 빠져가고 있음에서도 우리 삶의 팍팍함을 느낀다. 박물관 미술관이 많이 생겨나 우리의 삶이 한결 여유롭고 풍성해졌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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