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원학 제주생태교육연구소장·논설위원

세계자연유산지구인 거문오름의 분화구에는 한여름에 차디 찬 공기가 솟아나는 풍혈이 탐방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정강이 부분이 시릴 정도로 찬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온도계로 측정해보면 섭씨 10도 내외로 나타나 만장굴의 내부온도 보다 더 추운 느낌을 준다. 풍혈에서 나오는 공기는 지하의 지하수나 동굴의 영향으로 인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한 느낌을 주는 것인데 계절적 상이한 온도차이가 탐방객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풍혈은 마치 땅이 숨을 쉬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제주에서는 숨골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으며 제주의 어르신들은 대부분 숨골에 대한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다. 숨골은 사람의 생명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로 여길 만큼 소중하고 신중하게 숨골을 관리해 왔던 것이다. 특히 하천이 발달이 미약한 지역에 형성된 숨골은 지표수의 조절과 용천수의 함양에 매우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음과 이들의 순리를 저해했을 때 인간이 받는 자연의 재앙도 미리 알고 대처해 왔다.

숨골은 제주도와 같은 화산지형에서 많이 발달하는 것으로 특히 용암동굴을 형성하는 파호에호에 용암이 분포하는 지역에서 주로 형성되며 용암동굴의 함몰지, 스카이라이트, 균열대 등과 같은 지질조건을 갖는 지역에 잘 발달하는 특징을 보인다. 숨골의 규모는 수 십 센티미터 에서 수 미터에 이르며 수직 형과  경사 형이 대부분으로 한라산과 해안지대에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숨골은 곶자왈에 많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 있으나 오름 주변과 농경지에도 다량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주택가에도 숨골이 분포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숨골은 지표수를 빠른 속도로 지하로 이동시키는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시기인듯하다. 특히 제주도에서의 물난리의 원인은 숨골과 같은 물의 흐름을 방해한데서 기인한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숨골은 제주의 지하수를 함양하는 매우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매우 취약한 장소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특히 여름철 폭우나 태풍이 지나가는 시기에는 중산간에 위치한 숨골에 오염물질을 몰래 버리는 악질의 인간들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몇 십년에 걸쳐 만들어진 지하수가 이런 몰염치한 인간들의 행위로 인해 한순간에 오염되는 일이 우리는 오랜 기간을 통해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숨골의 분포와 관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판단을 해본다. 워낙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고 규모와 위치도 육안으로 판단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하거나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장기간에 걸친 전수조사를 실시하여 백년대계의 물 관리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최근 들어 중산간 등지에 우후죽순으로 건설되는 타운하우스와 각종 시설물들에 배출되는 오수처리의 투명성도 확실하게 공개하여 숨어있는 숨골의 악이용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지역어르신들의 구술조사와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한 숨골의 조사를 통한 친환경적인 관리정책수립의 로드맵을 구축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풍혈과 숨골은 사람이 숨을 쉬 듯 자연이 숨을 쉬면서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장소이다. 온기를 내뿜기도 하고 냉기를 방출하기도 하며 물을 지하로 이동시키기도 하고 시원한 공기를 지상과 지하공간을 대류하며 자연의 순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곳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눈에보이는 지상의 것들에 대한 지나친 숭배감에 빠져 진작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 준 지하의 세계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하게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할 시기이다.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내면의 세계에 충실해야 한다. 풍혈과 숨골을 통해 지금부터 제주 땅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새로운 시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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