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제주어보전조정위원·시인·논설위원

제주도를 창조한 여신 설문대 할망을 두 번이나 죽여도 되는가? 남의 모실에 사는 영등 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루에 제주해협에 왔다가 음력 열사흘 날 외유성 물고기를 거느리고 다시 육지로 간다는 거다. 

육지 학자가 삼다를 강의하면서 여자가 많으니까 첩이 많다고 했다가 말씀을 수정한 적이 있다. 제주도엔 첩妾은 없고, 족은각시가 있음과 바람이 많은 이유도 알고 갔다. 한라산에 봄이 오면 제주바다에도 봄이 온다는 사실로, 보리밭에 꿩알이 커  가면 전복도 같이 큰다. 공기가 무거우면 물이 되므로 물결도 바람이다.

알만한 제주출신 학자가 삼무를 강의하면서 사는 게 동녕바치 꼴이니 뭐 가져갈 게 있어야 도둑도 들고 대문도 만들 것 아니냐고 농담 비슷하게 말을 해서 섭섭한 적이 있었다. 동녕바치는 깡통을 들고 ''먹다 남은 식은 밥이라도 호꼼 줍서.' 허멍 빌어먹어야 거지지, 바릇잡이하러 바다에 가서 돌만 대싸도 구쟁기영 오분자기가 지락지락 붙어 있어 봉강(주워서) 먹어도 배가 불렀으니 제주도엔 거지가 없었던 거다. 거기다가 집성촌이 태반이라 초마가라, 뽀든(가까운)궨당 집을 어떻게 도둑질 한단 말인가.  

제주도에선 먹는 '무'를 왜 놈삐라고 하는지 모르는 무리들이 설문대 할망을 두 번 죽이는데 앞장섰을 것이다. 설문대 할망은 제주도와 부속 섬을 두루 만들고 아들 500명이나 낳았으니 대단한 출산력이다. 그런 신통력을 지녔으니 자식들의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여 죽이나 끓일 그런 몰명다리가 아니다. 

막내아들이 죽솥에 빠진 어머니의 뼈다귀를 발견하고 차귀섬까지 울면서 달려가고, 사백 구십 구명의 아들들은 대성통곡하다가 한라산 영실절벽에 올라가서 영실 계곡에 뛰어 들어 자살을 하고서 영실 기암으로 남아 있다고 덧댄들 웃기는 말이다. 오줌발로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갈라놓을 정도의 힘이라면 한라산에 사는 공룡도, 멧돼지도, 노루도, 지다리(오소리)도 얼마든지 잡아다가 풍부한 단백질 공급을 위하여 실컷 구워 먹일 수 있었고, 영지버섯, 야생 꿀, 토종 다래, 보리수 열매, 삥이(삘기), 꿩마농(달래) 낸시(냉이), 거기다가 고사리는 해마다 얼마나 무성하게 생겨나는지 한라산을 제라헌 고팡이라고 궁퉁이를 내어보면 절로 알아지는 일이다. 

설문대 할망을 얼마나 우습게 여겼으면 명주 한 필이 모자라서 팬티 없이 살았다고 떠드는 경우도 있어서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거기다가 한라산 골짜기가 100골이 아닌 99골이라서 호랑이 안 살았다는 거다. 원래 제주도도 육지였다는 연륙설을 모르니까 하는 말이겠지만.   

그래도 죽을 끓이다가 죽었다 하기가 설득력이 약해 보였는지 물장올 수심을 재려고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 죽었다고 강조하는 민속학자도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제주도 정신과 정서를 주제로 제주어 강의를 하면서, '고근산에서 놀던 고양이가 범섬에서 새끼들을 데리고 울고 있더라.'는 의미가 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사실, 엉뚱한 질문인 듯해도 이 질문은 제주도 스토리텔링을 위한 제안이다.

우선 제주해협에 산소가 가득한 지하 동굴이 있다는 상상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어도가 실제로 나타난다.

섬은 바다로 고립되어 있어 이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제주도는 처음부터 국제결혼을 한 거다. 혼인지에 가보면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외할머니 닮은 영등 할망만 믿고 살라하면 곤란하다. 세세연년 한라산이 풍요로운 것은 설문대 할망의 보살핌이 변함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한라산에 쌓이는 수백 만 톤의 적설을 관장하고, 현무암보다 두꺼운 얼음 속에서도 봄눈을 틔워서 꽃을 피우고 한라산 생명을 지키고 있으니 '오몽해질 때까지는 나냥으로 하겠다.'는 제주도 할망 정신을 실천하고 있음이다.

스토리텔러를 제주도에선 말장시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의지를 지니고 문화예술이나 문화정책 일환으로 일만 팔천 신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스토리를 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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