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JDC 공동기획 / 용암숲 곶자왈 자연유산으로] 9. 용암 위 생태

동백동산 습지는 최고 지점과 최저 지점의 표고가 각각 155m와 90m인 용암류 대지의 완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은 동백동산 내 대형 습지인 '먼물깍'.

대부분 파호이호이용암에 형성…15개 습지 분포
71종 나무 상록활엽수·곰솔숲 등 5개 군집 이뤄
벌채·천이로 종가시나무·구실잣밤나무 등 '공존'

△전면적인 비교 연구는 아직

곶자왈은 용암이 분출하면서 형성됐다. 각 곶자왈이 다양한 용암 위에 생성됐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를 끄는 요소다.

곶자왈은 파호이호이용암, 아아용암, 전이용암, 이동 집적과정을 거친 용암 등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보통 식생은 동일한 기후조건에서 같은 유형의 종으로 군집을 이룬다. 또 토양조건도 같아야 한다.

만약 한 곶자왈이 같은 식물군집으로 구성됐다면 동일한 용암유형 위에 형성됐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또 같은 곶자왈 안에서도 서로 다른 용암의 유형이 섞여 있다면 이에 따라 식생도 여러가지 유형을 보여야 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런 관점에서 연구한 사례는 없다. 다양한 용암으로 곶자왈이 이뤄졌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한편 통시적이면서 전면적인 비교 연구를 시도하기엔 아직 여건이 덜 성숙했다는 문제도 있다.

△다수의 습지 분포 눈길

선흘곶자왈은 용암의 유형이 뚜렷하다.

동백동산으로도 잘 알려진 선흘곶자왈은 대부분 파호이호이용암 위에 형성됐다.

동백동산은 지난 2011년 3월 람사르습지에 등록됐다. 등록 면적은 총 59만83㎡다. 이보다 앞서 1981년 8월에는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됐다.

'한국민족대백과'에 따르면 제주 동백동산 습지는 최고 지점과 최저 지점의 표고가 각각 155m와 90m인 용암류 대지의 완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습지의 동·서 방향 길이는 1040m, 남·북 방향 길이는 730m로 이 일대에 15개가 넘는 습지가 있다.

한두 개가 아닌 다수의 습지가 곶자왈에 분포하고 있다는 점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벌채 등 훼손으로 변화

곽정인, 이경재, 한봉호, 송지호, 장종수 등이 2013년 한국환경생태학회지 27권 2호에 게재한 '제주도 동백동산 상록활엽수림 식생구조 연구' 논문에 따르면 동백동산에 서식하는 나무는 총 71종으로, 여러가지 조합의 군집을 형성하고 있다.

암괴 위에 형성된 상록활엽수 숲과 어느 정도 토양층이 발달한 지역의 곰솔 숲 등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동백동산은 생태학적으로 5개의 군집으로 구성됐다.

이 중 4개 군집은 구성하고 있는 종들이 다소 다르고, 구성 비율이 조금씩 다를 뿐 대체로 종가시나무, 동백나무, 생달나무, 구실잣밤나무 같은 상록활엽수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모두 암괴들이 발달한 곳을 생육기반으로 하고 있다.

동백동산 식생의 특징은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는 종가시나무와 그 다음으로 많이 서식하고 있는 구실잣밤나무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실잣밤나무가 압도적인 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제주도의 상록수림을 지배하는 종은 구실잣밤나무'라는 통념과 거리가 있다.

원래 구실잣밤나무숲이었지만 주변 주민 등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벌채하면서 새롭게 나타난 종가시나무와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결국 동백동산은 기존의 난대지방에 분포하는 상록활엽수림과는 다른 식생구조와 천이 경향을 보여 식생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다.

또 과거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되기 전에 훼손되면서 일반적인 상록수림과 다른 식생구조와 천이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별취재팀=한 권·고경호 사회경제부 기자, 김찬수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

파호이호이용암으로 된 선흘곶자왈에는 습지가 발달해 있다.

곶자왈 기반 용암 '1차천이계열'
인위적 이용으로 천이 교란 발생

토양 즉, 식생 기반이 같으면 동일한 기후에서는 동일한 군집을 이룬다. 그렇다면 동백동산에서 나타나는 여러 개의 군집들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곰솔군집은 동백동산이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되기 전까지 경작지였다.

농사를 지을 땅이 부족했기 때문에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경작할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이용했던 시기였다. 용암의 유형과 관계없이 한줌 흙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경작이 이뤄진 것이다.

197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화전을 철거하고 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선흘곶자왈의 곰솔 숲이 형성됐다.

지금의 종가시나무군집이 구실잣밤나무가 주로 자라던 숲이 훼손된 후 천이가 진행되면서 나타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천이'는 아주 널리 쓰이는 생태학 용어의 하나로 어떤 일정한 장소에 존재하는 군집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다른 군집으로 바뀌어 비교적 안정적인 극상으로 되는 과정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지질학적 시간 단위로서 종의 생성·소멸에 해당하는 지사적 천이도 포함된다고 한다.

천이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군집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오해다.

어떤 시기에 존재하는 군집이 환경형성작용으로 환경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한 환경이 작용해 새로운 군집이 형성되는 군집의 자발적인 변화를 주축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천이계열이라고 한다.

용암과 같은 전혀 생물을 포함하지 않는 완전한 나지에 생물이 침입해 시작되는 것을 '1차천이계열', 군집이 파괴된 후에 생기고 처음부터 토양 속의 종자, 지하경, 그루터기, 토양 동물 등 약간의 생물을 포함하는 장소에서 시작되는 것을 '2차천이계열'이라고 한다.

곶자왈의 기반은 용암이므로 1차천이계열을 따라 식생이 형성됐다.

그렇다면 종가시나무는 구실잣밤나무를 지배자로 하는 군집으로 천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출현한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선흘곶자왈은 너무나 울창해 극상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용암과 식생과의 관계를 설명하려면 당연히 극상의 상태여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울창해 보이는 식생도 사람이 장기간 이용하면서 천이계열을 교란한 결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선흘곶자왈은 진정한 극상이 아닌 아극상이다.

용암과 식생의 관계를 풀기 위해선 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이어지는 의문점들을 해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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