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를 통한 치유의 인문학 23. 제주여성영화제 다시보기① 사유를 넘어 실천!

스크린으로 표출한 세상 앞에 당당한 여성 군상
'우리는 서로의 용기 공감'… 자기혐오 극복 담아

제18회 제주여성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18회째 제주여성영화제를 관람하고 있는 필자로선 올해는 남다른 느낌으로 와닿는 영화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제부터 나는 착하게 살고 싶다"는 식의 유아적 반성의 태도가 더 이상 미덕이 될 수 없다는 성찰에 이르게 됨이 개인적 성과다.

말로만 하는 사유, 말로만 하는 반성,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나보다. "세상에서 가장 드문 게 진짜로 산다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라고. 제주여성영화제 요망진('야무지고, 다부진'을 뜻하는 제주말) 당선작 두 편을 보면서 나는 영화적 사명이 있다면 하나는 사유의 길이요, 두 번째는 실천의 길인데 요망진 당선작은 후자에 손을 들어준 것이라 보였다. 관객상, 작품상 모두 이제는 사유를 넘어 실천할 때라고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선언하고 있었다.

'움직이면 보인다'

제주여성영화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요망진 작품상은 강유가람 감독의 '시국페미'(2017)에게로 돌아갔다. 강유가람 감독은 '이태원','모래' 등을 연출했던 여성주의 영화감독이다. 심사위원들로부터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특성을 잘 활용한 작품으로 우리 사회가 시급히 공유하고 논의해야 할 동시대적인 질문과 이슈를 이야기하고 있다."라는 평을 받았다. 나는 동시대성을 잘 포착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움직이면 보인다'는 어떤 가능성, 희망을 보여준 영화이다. 제주말로 '오몽'만이 진실이다는 명제를 던져주었다고나 할까.

지난해 촛불 시위 광장에서 있었던 시국페미는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가시화된 여성혐오에 대한 공포를 밀실의 언어가 아닌 광장의 언어로 전환시키고자 한 주체의 선언이었다.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시선을 받는 것은 약자에 대한 혐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약자에 대한 혐오의 시선이 있는 한 민주주의는 멀었다는 것이 시국페미의 입장. 그런데 역풍은 시국페미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몰아쳤다. "촛불시위에 웬 페미니즘?"라는 비아냥과 또 다른 혐오의 시선으로. 아무리 정의와 선(善)을 외치는 진보집단이라 할지라도 이율배반적일 수 있다는 것을 촛불 아래서 훤히 드러났다.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시국페미를 미친년 널뛰는 양 쳐다보는 시선은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를 가늠하게 한다. 그러니까 우린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시국페미'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기 나온 처녀들 예쁘다." "시위도 하고 기특하다." 촛불 시위를 하고 있는 여성들을 보고 어느 중년 남성이 하는 말이다. 그의 음성에는 왠지 기름기가 느껴진다. 불순한 의도를 넘어 혐오발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점이 포착된 것이다. '처녀', '예쁘다', '기특하다'…, 고 표현된 핵심 언어에는 중년남성이 갖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비아냥이 숨어 있다. '젊고 예쁜 처녀들은 시위에 관심이 없을 텐데 시위에도 나왔다니 참 기특하다'는 말이 칭찬이지 왜 여성혐오냐고? 그 말이 칭찬이라고 읽힌다면 스스로의 인권감성지수에 대해 재진해보아야 한다.

다큐멘터리 '시국페미'의 이야기구조는 어떤 '예감'으로부터 시작해 '분노', '광장', '페미니스트', '페미년', '결의', '역풍', '용기', '신호탄' 등의 키워드로 진행된다. 촛불 시위 광장에 동참하면서 시작된 시국페미는 동지라고 느꼈던 진보들로부터 오히려 역풍을 맞으면서 서로의 의지를 다잡게 된다. 진보의 한 울타리 안에서도 색안경의 시선인데, 우리는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못하구나 하는 자각. 그것이 그들만의 '페미존'을 형성하게 하고 "우리가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는 구호를 당당히 외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검은 리본을 단 거울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우리는 어떤 모습인지 서로가 서로를 비추어보고자 한 것이다. 무섭지만 당당히 걸으면서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를 확인한다. 두려움을 견딜 수 있음에 기뻐하고, 먼 길 가는데 같이 걸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무엇보다 '페미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에 확신하면서.

영화제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관심은 관객상이다. 전문가 집단이 뽑은 작품보다 관객들이 뽑은 작품이 의외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보장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독의 입장에서도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예술가로서도 뿌듯한 일일 것이다.

사유를 넘은 실천이 '희망'

제18회 제주여성영화제에서는 '요망진 당선작(단편 경선)'에 지원한 192편의 작품 중 총 10편의 작품이 본선에 진출, 상영되었고, 그 중에서 관객상으로 뽑힌 작품은 이윤영 감독의 '여자답게 싸워라'이다. '여자답게 싸워라'는 주짓수를 수련하는 감독의 체험이면서 여성이 자기혐오를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밤에 혼자 걸어도 무섭지 않고, 자신감도 생겨서 좋은 것 같아요." 얼마 전 뉴스에서 주짓수를 배우는 어느 여중생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처럼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의미로 주짓수를 배우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폭력이 난무한 세상에서 여성들의 자기방어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신체적으로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의 몸.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선 방법은 하나다. 호신술을 배우는 것이다. 영화 '여자답게 싸워라'는 그러한 착상에서 시작한다.

영화에서 윤영은 주짓수를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여자' 라는 신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가 없다. 그런데 국내 유일한 여성 주짓수 블랙벨트 이희진을 찾아가면서 '여자라서 약해'라는 윤영의 생각에 균열이 생긴다. 콤플렉스가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있는 그대로의 여성성을 인정하면서  몸과 마음의 단련이 건강하고 안전한 삶의 대안이라는 것을 말이다.

감독은 말한다. "'여자답게 싸워라'를 만든 본질적인 주제의식은 '사회적 약자의 주체성 탈환'에 있다."라고.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힌 모든 약자들이여, 걱정하지 마라. 약자도 강자를 이길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단련한다면 말이다. 주짓수는 하나의 은유다. '전복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자 선택한 것이 주짓수이다. 너무나 답답한 삶의 벽은 무기력을 양산한다. '고시원살이, 시급 6천470원 알바생, 일상적 혐오와 시선강간, 선천적으로 약한 힘' 등은 2017년 현재 약자들의 자화상이다. '여자답게 싸워라'라는 현재 조건에 대한 전복의 가능성과 낙관성을 보여준다. 단점이 장점으로 재창조되는 회복탄력성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현실은 사유에 있지 않고 몸에 있다. 이제 우리는 움직여야 할 때. 사유를 넘어 실천으로! 그것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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