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수 제주도산악연맹회장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는 문장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이 문장의 인(仁)은 어진 사람을 의미하며 '산 같이 고요하고, 장수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산은 이렇듯 마음을 정화시키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산에 오르는 우리는 얼마나 인(仁)한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02년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 산의 해'에 따라 매년 10월 18일을 '산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이렇게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그 가치와 보존의 의미가 뒤따른다. '산'의 존재의미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깊이와 성찰을 다시 한 번 더듬으라는 뜻일 것이다. 

'산'은 자연스러운 존재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닌 자연스럽게 생겨난 공간이다. 그렇기에 매일 오르는 산도 늘 다른 얼굴이기에 지겹지 않고 갈 수 있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이나 관광지인 경우에는 한 번 보고나면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눈으로 보고 흥미를 느끼기는 하지만 남는 것이 없다. 하지만 산은 매일매일 다른 풍경으로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기쁨과 활력을 준다. 산은 우직해서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아마 그런 이유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지도 모르겠다.

제주에는 은하수를 끌어당긴다는 '한라산'이 섬 중앙에 우뚝 서 있다. 어디서나 한라산이 눈앞에 성전처럼 어른거린다. 한라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제주를 있게 한 생명력의 근원지이다. 한라산이 품고 있는 수많은 동·식물들의 보금자리이면서 흐르는 물줄기는 제주인들의 생명수이다. 또한 화산활동으로 인해 주변에 많은 오름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책임이 막중한 산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한라산은 도민들 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철마다 찾는 곳이다. 한라산 꼭대기 백록담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데에는 꼬박 8시간을 걸어야 한다. 그것도 한라산 중턱인 1100m이후에서 시작할 경우다. 1950m에 해당하는 한라산이지만 실상 우리가 걷는 것은 850m정도다. 어찌되었든 한라산은 섬의 생성과 신화와 전설을 품고 있는 명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한라산은 개발이라는 이름에 발목이 잡혀있다. 케이블카 설치니 뭐니 하면서 한라산 중산간 일대에는 이상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탁 트인 제주의 풍경은 이제 옛말이 되고 있다. 산은 산을 둘러싼 주위 풍경까지 아우를 때 자연스러움을 얻는다. 우리가 산을 오르는 이유도 그런 자연스러움에 동화되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산에 있으면 편안해지고 그동안 쌓였던 오해와 힘든 마음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자연의 주인은 자연이다. 즉 산의 주인은 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허락도 없이 산을 드나들면서 산에 대한 예의마저 갖추지 않는다. 저절로 생겨난 자연이라고 해서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잘못으로 큰 재앙을 불러오기도 한다.

'산의 날'을 맞아 우리는 '산'이 품은 마음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仁)한 사람만이 산을 오를 자격이 있을 것이다.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 산이 오래도록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져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위안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산을 오르면서 산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있는지. 인(仁)을 실천하고 있는지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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