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JDC 공동기획 / 용암숲 곶자왈 자연유산으로] 15. 목련

목련은 우리나라 중 제주도에만 분포하며, 그 중에서도 교래곶자왈에서 집중적으로 서식하고 있다. 사진은 교래곶자왈에서 발견한 목련.

제주에서만 분포…도내에서는 교래곶자왈서 88% 서식
안덕-한경곶자왈 지대서는 단 한그루도 발견하지 못해
습한곳 선호 특성…곶자왈 기반용암 유형과 깊은 관계

△주로 깊은 산 속에 자라

목련의 원산지는 어디일까. 흔히 자목련이나 백목련으로 부르는 목련들은 중국원산이다. 우리나라에도 목련이 자생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제주도를 비롯한 한반도에는 3종의 목련이 있는데 그 중 널리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함박꽃나무를 들 수 있다.

봄이면 한라산 구상나무숲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육지부에서도 이 꽃을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리산, 덕유산, 오대산, 태백산, 설악산 등 백두대간의 고지에서는 어김없이 이 꽃이 자라고 있다.

북한에서도 함박꽃나무는 거의 전역에 자라는데 남한에서와 마차가지로 주로 깊은 산 속에 자란다.

북한의 공식 국화가 바로 함박꽃나무다. 이 나무는 크게 자라야 3m쯤 된다. 밑에서부터 가지가 많이 나와 덤불처럼 자라는데 잎은 크고 낙엽이 진다.

△꽃·열매 주먹모양

제주도에는 함박꽃나무 외에도 육지부에서는 볼 수 없는 목련이 두 종류가 더 있다. 하나는 초령목이다. 이 나무는 상록활엽수로 서귀포의 계곡에서 자라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목련(마그놀리아 코부스·Magnolia kobus)이다.

여기서 마그놀리아는 프랑스 몽펠예 왕립식물원장을 지낸 식물학자 피에르 마그놀(Pierre Magnol, 1638-1715)을 기념해 지은 이름이고, 코부스는 주먹을 의미하는 한자(拳)의 일본어 발음 '고부시'에서 유래했다.

목련의 꽃 또는 열매가 주먹모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목련이야 말로 목련 중의 목련이다. 일본열도와 제주도가 원산지다. 전 세계적으로 이 지역에만 자라고 있다.

제주도에서 이 나무는 높이 20m, 직경 80㎝까지 크게 자란다. 이른 봄에 다른 나무들의 꽃이 피기도 전에 숲의 꼭대기를 차지해 마치 눈 쌓인 지붕처럼 새하얀 꽃무더기를 이루면서 피어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세계적으로 목련은 210종 정도가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제주도에 자라는 목련은 그 중 가장 크게 자라는 종의 하나일 것이다.

△수백 내지 수천그루 추정

제주도 내 분포가 흥미를 끈다.

숲속에 드물게 자라지만 한라산의 해발 200m에서 1300m까지 분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생지가 다소 습한 곳이라는 점이다.

남사면보다는 북사면, 서사면보다는 동사면에 더 많이 자란다. 건조하지 않은 곳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2011년 제주테크노파크가 환경부에 제출한 '곶자왈 희귀 및 멸종위기 야생식물자원의 자생지 특성규명 및 식물자원 관리기술개발' 보고서에 목련의 분포도가 포함돼 있다.

주요 내용은 북사면과 동사면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본구 조사에 의한 결과지만 제주도 내 전체의 88%가 교래곶자왈에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곶자왈에는 개체수로 본다면 아마도 수백 내지 수천 그루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안덕-한경곶자왈지대에서는 단 한 그루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목련이라는 종은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분포한다는 점, 주로 곶자왈에 분포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교래곶자왈에 집중 분포한다는 점, 제주도내에 비교적 널리 분포하지만 안덕-한경곶자왈에는 전혀 분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목련이 건조지역보다는 다소 습한 곳을 선호하는 종의 성격으로 볼 때 수분 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곶자왈의 기반 용암의 유형과 관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한 것이다.

특별취재팀=한 권·고경호 사회경제부 기자, 김찬수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

과학적 진리 탐구 '사도'
목숨 건 식물탐사 '모험'

종교적·양심적 신념 아닌
과학발전 위해 탐험 나서
곶자왈 내 식물들도 명명

아름다운 목련을 언제, 누가 처음 세상에 알렸을까.

린네(Carl Linnaeus, 1707-1778)는 나라마다 다른 생물의 이름을 통일할 필요성을 절감해 '이명법'이라고 하는 학명체계를 제안했다.

놀랍게도 이 방식은 250년도 더 지난 오늘날의 현대과학에서 그대로 쓰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는 수많은 목숨 건 탐험이 있었다.

린네는 전 세계를 무대로 동식물을 탐사하기 위해 학자들을 '사도'로 임명해 보내게 된다. 예수의 12사도에 빗댄 말이다.

대부분 매우 위험한 탐사였다. 17인의 사도 중 7명이 귀향하지 못했다. 첫 번째 사도인 크리스토퍼 퇴른스트롬은 1746년 베트남 콘 손 섬에서 열사병으로 죽었다.

이에 그의 미망인이 자식들을 애비 없는 아이로 만들었다며 린네에게 심하게 분노했다.

이 사건 이후 린네는 미혼 남자만을 보내게 된다. 종교적, 양심적 신념으로 목숨을 바친 사례는 있었어도 이처럼 과학적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마치 순교하듯이 목숨을 내건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탐사를 통해 수많은 동식물들을 채집했는데 그 성과가 토대가 돼 린네의 분류체계가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 후 찰스 다윈이 비글호에 승선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진화론을 정립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사도' 중에 툰베르그(Carl Peter Thunberg, 1743-1828)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프리카 식물학의 아버지' '일본 서구 약학의 개척자' '일본의 린네'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는 1775년 일본 나가사키 데지마에 있는 네덜란드동인도회사에 도착하게 된다.

당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권에 의해 외국인에게는 엄격한 통제가 이뤄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이 무역상관의 수석의사로 임명되고, 네덜란드 대사와 함께 오늘날의 도쿄인 에도를 공식 여행하게 되는 등 비교적 자유로운 활동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동식물 표본을 채집하게 되는데 이 때 목련도 채집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목련의 이름은 스위스 식물학자 드 칸돌(Augustin Pyramus de Candolle, 1778-1841)이 툰베르그가 채집한 표본과 정보를 이용해 지었다.
그러나 툰베르그는 그가 채집한 식물 대부분 직접 이름을 붙였는데 제주도 곶자왈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등도 그가 명명한 식물들이다.

그 외에도 그의 식물학적 업적을 빼고 제주도의 식물을 논할 수는 없는 지경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그가 1784년 출판한 「일본식물지」에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목숨 건 모험을 각오하지 않으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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