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공동체를 엿보다 15. 유네스코 후속 작업 1

사진=신준철 작가

12월 1~8일 의장국 지위 첫 국제회의 제주서 개최
'제주해녀문화' 등재 효과, '공동체'해석 확장 눈길
단순한 관람·체험 아닌 문화 전달 장치 고민해야

제주에서 특별한 국제행사가 열린다. 지난해 제주해녀문화가 우리나라의 19번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랐을 때 함께 전해졌던 낭보의 결과다. 지난해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를 위한 정부간위원회(이하 무형유산위원회, 11월 28~12월 2일) 제11차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올해 열리는 제12차 무형유산위원회 회의를 우리나라에 유치했다. 당시 예정 개최지는 서울이었다.

△ 서울에서 제주로 의미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우리나라의 19번째, 제주의 2번째라는 숫자가 아니라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12월 4~8일 서울에서 열렸을 무형유산위원회는 1일부터 9일까지 제주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개최 장소를 제주로 바꿀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제주해녀'에 있다.

우리나라는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등재와 더불어 무형유산위원회 의장국을 수임했다. 그 임기가 제주에서 열리는 무형유산위원회 회의 때까지다.

무형유산위원회는 대륙별로 선출된 24개국으로 구성, 무형유산보호협약의 이행을 위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대표적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의 공식 결정, 171개 당사국의 무형유산보호활동 조치에 대한 평가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 무형유산보호협약(The 2003 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에 가입한 이후 2차례(2008~2012, 2014~2018) 무형유산위원국으로 활동했다. 이번 제주 무형유산위원회 개최는 우리나라의 '첫'이란 의미에 더해 유네스코 유산분야에서 주도적 입지를 강화하는 기회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의장국으로 우리나라는 올해 등재 신청을 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무형문화유산을 한꺼번에 세계에 알릴 기회를 얻었다. 그 무대가 제주라는 점은 더 의미가 있다. 

△ 삶을 영위하는 공동체 전승

지난 2012년 아리랑 이후 우리나라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한 종목을 보면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해진다. 2013년 김장문화와 20114년 농악, 2015년 줄다리기(캄보디아·필리핀·베트남 공동등재), 그리고 제주해녀문화(2016)에 이르기까지 공동적으로 '공동체'라는 단어가 언급된다.

특히 어떤 행위로 특정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문화유산(Living Heritage)'이라는 점에서 제주해녀문화는 단연 독보적이다. 삶을 영위하며 활발하게 전승되는 모습을 '유산'으로 인정했다는 점도 그렇다. 김장문화에 대해 가족 외에 공동체의 참여를 허용하고 그 방식을 전승하는 형태에 주목했던 유네스코는 농악에 대해서는 '관람을 하는 사람들까지 참여해 여흥을 즐기는'것을 공동체문화의 특징으로 해석했다.

제주해녀문화에 대해서는 급격한 현대화, 산업화 과정에서도 소멸되지 않고 유지된 데다 뚜렷한 '공동체' 기준, 여성의 경제활동 인정과 여성성, 세대 전승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생활 문화를 주목했다.

무엇보다 더 기대를 모으는 것은 이번 정부간위원회에서는 그동안 보호협약 이행 기준에 대한 논의를 정리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 이행평가 제도를 공식화할 예정이란 점이다. 이 경우 관련 제도가 인용될 때 마다 제주가 언급되는 등 추가적 파급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촘촘한 '입소문' 효과 집중

중요한 것은 어떤 '제주해녀문화'를 보여줄 것이냐다. 이번 정부간위원회에 170여 가입국 및 문화전문가와 내외신 기자 등 120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제주 무형유산위원회에 맞춰 제주도는 제주해녀를 소개하는 유산 탐방 프로그램이 준비했다. 지역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별다른 장비 없이 작업을 하는 원시적 형태의 물질 현장을 보고, 일부는 직접 해녀체험을 하게 된다. 공동체를 보여주는 과정도 있겠지만 보다 꼼꼼한 문화 설정 작업이 필요하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과정에서 해녀에게 '생태친화적인 생업문화'란 대표성이 부여됐다.

출가물질 역시 현지 문화와 제주 문화가 물질이라는 전통적 어로문화를 기반으로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한 점을 들어 문화 범주로 살폈다. 또한 자연적 생태주기를 이용하며 상호부조와 노동협업의 관습을 지켜온 '여성 어로'라는 특이성에도 대표성이 부여됐다. 무엇보다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전통과 관습, 기술, 공동체의 진화는 여성과 신앙, 문학 등으로 확산되는 등 한국 문화와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접근 역시 눈에 띈다. 경험을 통해 체득한 '몸 기술(Live-Ware)'이 시각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문화로 해석할 수 있게 하는 데는 해녀 공동체는 물론 이를 이해하고 전승·보존에 노력하는 도민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순서다. 

 

프랑스 노벨문학상 수상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폭풍우」

"…할머니들의 손톱은 다 까졌고 까맣다. 목은 거북이처럼 주름져 있다. 할머니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무로 된 잠수복을 벗는다…육지에 올라오면 발걸음은 무거워 지고 동작은 어설퍼진다. 하지만 내 눈에는 할머니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프랑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의 새 소설집 '폭풍우'(서울셀렉션)의 한 대목이다.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 온 그는 제주 해녀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았다. 책 시작에 '제주 우도의 해녀들에게'라고 존경을 표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버지가 읽던 잡지에서 제주해녀를 본 8살 소년은 수십년이 지난 뒤 직접 그들과 만났고 그 때와 다른 사랑에 빠졌다. 처음 막연한 동경이었던 것이 삶과 용기에 대한 존경으로 바뀌었다.

불어로 쓴 글을 우리말로 옮긴 송기정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는 그런 그의 마음을 담아 소설 '폭풍우'에 제주해녀들에게 바치는 오마주라는 설명을 붙였다. 해녀 엄마를 둔 혼혈 소녀와 전쟁에 대한 죄의식에 시달리던 종군기자가 우연히 만나 폭풍우를 통해 치유의 해법을 얻는다는 줄거리 속에 해녀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함께 실린 '신원 불명의 여인'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소녀가 자신이 살던 프랑스 파리에서 고향인 아프리카 가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낯설고 다른 장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폭력·전쟁·정체성 등 공통된 키워드와 함께 주제의식은 마치 하나의 글인 듯 연결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