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를 통한 치유의 인문학(28) 세기의 여성 감독④ 가와세 나오미 편

'너를 보내는 숲'(2007).

세월호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지만 이를 은폐한 해양수산부 현장수습본부장을 보직해임하고 진상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삭이 들린다. 단순하게 보면, 직무유기에 해당되나 사건이 지닌 의미와 세월호 사건에 대한 국민정서를 생각할 때 사체유기죄와 유사한 강도의 정서적 반감을 일으키는 사건이다. 

산 자에 대한 연민에 죽은 자에 대한 연민은 비교할 바가 못된다. 더욱이 아무 잘못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져간 자들에 대한 죄의식은 뼈 한줌이라도 고이 모시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만 그의 영혼이 그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아니면 살아남은 자들 스스로를 위한 애도일 수도 있다. 일본의 여성영화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묻게 되는 물음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죽음 이후에도 영혼과 대화할 수 있을까?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 등.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가 주로 다루는 주제들은 결핍과 상실로 인한 상처와 외로움, 방황, 그리고 사랑이다. 결핍과 상실의 극단적인 양태는 죽음이고, 유기나 이혼, 떠남과 같은 것들이 일반적인 예에 해당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의지하던 혹은 의지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떠나거나 죽으면 겉잡을 수없는 상실감을 느낀다. 상실감은 또 다른 파도를 부르는데 섭섭함이나 억울함을 넘어 분노나 증오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죄 없이 죽어간, 사랑하던 이들에 대해서는 한없는 죄책감과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별이든 좋은 이별을 하지 않으면 감정의 찌꺼기로 인한 고통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심하면 우울증이나 실어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너를 보내는 숲'(2007)에 나오는 시게키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너를 보내는 숲'(2007)에서 마치코(오노 마치코 분)는 시골의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아이를 잃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보살피며 살아가는데, 시게키(우다 시게키 분)라는 노인은 유난스럽게 까다롭고 침울하다. 어느 날 서예 시간에 시게키가 마치코의 이름에서 '치'자를 지워버리는 일이 생긴다. '마코'라는 이름을 읊조리면서. 알고보니 '마코'는 그가 사랑하던 아내이름이고, 그의 배낭 속에는 아내에게 쓴 일기와 편지가 가득했다. 

마치코는 그를 아내 마코의 무덤이 있는 숲으로 데려다 주기로 한다. 숲으로 가던 중, 차가 움직이지 않게 되고, 마치코가 사람을 부르러 간 사이 시게키는 숲으로 무작정 걸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결국 마코의 무덤을 찾아낸다. 길을 잃고 헤매느라 만신창이가 된 그는 아내의 무덤에 일기장을 쏟아놓고, 아내의 나무 옆에 무덤을 판다. 그 옆에 가서 눕고 싶다며. 마치코는 함께 무덤을 파주면서 마치 자신이 그가 된 듯한 희열감을 느낀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고 바람이 살갑다. 햇살 속에, 나뭇잎 사이에, 바람 사이에 죽은 자와 산 자가 나란히 눕는다. 그러한 애도 행위는 결국 충만한 안도감으로 피어난다. 

영화 '너를 보내는 숲'은 아이를 잃은 젊은 여성과 아내를 잃은 나이든 남성이 어떻게 서로의 아픔이 맞닿고, 위로하며, 치유하는가를 보여준다. 33년 전 죽은 아내를 현재까지 끌고 와 함께 살고 있는 시게키는 심각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마치코를 만나 아이처럼 웃게 된다. 시게키는 일기장 속에서 아내를 만나왔지만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살과 살의 만나는 느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느낌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결국, 마치코의 도움으로 아내의 나무가 있는 숲을 행했을 때 뜻밖의 '살아있음'을 경험한다. 길을 잃고, 비에 젖어, 나체의 몸으로 서로를 부둥켜 안았을 때 그때 비로소 "살아 있어"라고 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어떤 성적인 결합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의 결합, 상처와 상처의 결합인 것이다. 서로를 상처를 보듬어주려는 사랑이 피어났을때, 시게키 아내가 남기고 간 오르골의 맑고 청명한 음악소리가 가늘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린 마치코의 얼굴 위로 바람이, 햇살이, 청명하게 부서진다. 마치 죽은 영혼들이 그들 이마에 축복의 키스를 내리듯이 말이다. 

가와세 나오미 영화는 한 편의 시다. 햇살과 바람이 전하는 영혼의 언어를 받아 적는 그녀만의 시적 진술, 그것은 여느 영화이론서나 영화공부가 가르쳐줄 수 없는 영혼의 체험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앙 : 단팥인생 이야기'(2015).

영화 '너를 보내는 숲'이 죽음에 대한 영화라면 '앙 : 단팥인생 이야기'(2015)는 삶의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벚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 도쿠에(키키 키린 분) 할머니는 빵 냄새에 이끌려  '도라야키'(일본의 전통빵)를 파는 작은 가게 앞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가게 주인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 분)를 만나게 된다. 센타로는 얘기치 않은 사고로 사람을 때리게 되어 복역까지 한 사람이었다. 도라야키 가게를 하게 된 이유는 빚 때문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그의 표정은 늘 침울하고 무기력하다. 

도쿠에는 50년 동안이나 단팥을 만들어온 장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나병이라는 사회적 감옥이 드리워져 있었다. 실제적 감옥살이를 한 센타로와 시선의 감옥이 지워진 도쿠에가 만나 신나게 도라야키 가게를 운영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 벽을 넘어설 수는 없었고, 두쿠에는 쓸쓸히 요양소로 돌아간다. 도쿠에가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단팥을 만들 때 나는 항상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것은 팥이 보아왔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들을 상상하는 일이지요." 라고. 

도쿠에 할머니는 영혼과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센타로에게 사랑을 듬뿍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아픔을 낯빛만으로도 알아들을 수있는 영혼의 능력을 지녔기에. 그녀는 벚꽃 나무 아래 묻혔다. 센타로는 그 나무 아래서 단팥빵을 판다. 처음으로 소리내어, "도라야키 사세요 도라야키가 왔어요"라고 외친다. 도쿠에 할머니의 사랑 덕분이다. 

가와세 나오미는 감독이기 보다는 작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듯하다. 또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작가이다. 사랑은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지 않은 자는 알 수 없다. 그것이 궁금하다면 영화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2015)를 봐야 할 것이다. 먼 바다에서 생긴 파도의 마지막 부분을 받아들인다는 게 어떤 것인지. 파도의 끝자락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느끼는 사랑, 그것은 충만한 고요의 상태를 의미하리라. 그러니 사랑은 무(無)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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