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강협(활동가)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소장

얼마 전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아들이자 친구이며, 우리의 미래 세대 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아직도 배워야 할 나이에 삶의 현장, 아니 위험한 노동의 현장으로 내몰리면서 그 생명을 놓아야만 했다. 이 사회는 고 이민호군에게 배울 것을 충분히 가르쳐주고, 보장해주었는가? 이 사회는 고 이민호군에게 안전함과 적절한 쉼, 적절한 급여를 제공하고, 고귀한 노동의 권리를 부여하였는가? 

지금 현재 제주사회는 많은 논란 속에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중산간 개발 사업과 어마어마한 관광객을 목표로 하는 제2공항 건설뿐만 아니라, 영리병원 설립 논쟁, 영리기업의 물 증산 요구 등 하나하나가 제주 사회의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사업들이 휘몰아치듯 들이닥쳤다. 이해관계가 큰 제주도의 일부 기득권 세력 또는 정치세력의 의해 '제주도에게 경제적 풍요를 안겨줄 것'으로 판단된 사업은 일방적으로 추진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제주 사람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었다. 사업이 얼마나 큰돈이 되는 지는 떠들어대지만, 그곳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은 눈앞의 떡 하나 주는 꼴로 은근슬쩍 넘어간다. 그리고 제주다운 삶의 모습과 공동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돈으로 딱지를 매겨 팔아넘긴다. 제주사람들에게 풍요를 줄 것처럼 허세를 떨지만,실제 개발의 엄청난 이익은 자본에게 돌아간다. 개발의 과정이나 결과에 있어 제주도민들의 참여와 권리, 의사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으로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는 나쁜 행태로 매도당한다. 

어느 날 갑자기 강정마을이 제주도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가장 민감한 마을이 되어버렸다. 강정에 건설된 해군기지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제주사회의 가장 큰 현안이 될 것이다. 제주는 과거 '대동아 전쟁(2차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에 있어서 최종적인 방어기지로 활용되었다. 정재(부엌)의 쇠숟가락 하나까지 공출당하고, 낮이건 밤이건 오름에 올라 땅굴을 팠으며, 가미가제 특공대를 위한 공항을 건설하고, 해안 절벽에 자살특공대를 위한 구멍을 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군사시설들은 후에 좌우이념의 대결 속에서 학살의 현장이 되곤 하였다. 또 그 지독한 4.3을 겪어야만 했다. 전쟁이라는 폭력 속에서 제주 사람들은 그 귀한 생명을 무작위로, 무더기로 내놓아야 했다. 

1948년 12월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문이 채택된다. 세계인권선언문은 인간 존엄성을 기반으로 하여 모든 인간들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과 명시되고, 인권이행과 관련된 사항도 규정하고 있다. 이 세계인권선언문은 1차, 2차 세계대전의 비극에 대한 반성으로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결코 훼손될 수 없는, 보장되어야만 하는 최고의 가치임을 선언하는 문헌이자 실천이 된다. 이후 세계는 이러한 인권적 가치를 보편적인 가치로 수용해 나가면 인권의식을 확장해 나간다. 특히 세계시민사회단체들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인권선언문의 내용을 해석하고, 수용하며 확장을 주도해 나갔다. 뿐만아니라 국가들은 인권의 가치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지위와 명분을 획득한다. 실제로 인권적 가치는 현재 국제 사회의 맥락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평가 받고 있다. 

앞서 제주의 상황을 언급하였다. 다양한 정치/사회/경제/문화/역사적 문제들이 사람들의 삶을 혼란에 빠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69년전 전세계 사람들이 세계인권을 고민했듯이, 우리 제주도도 평화의 섬이자 인권의 섬으로서, 제주 사람들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장에 중독된 사회의 구조가, 국가 또는 중심 권력의 개발 욕구가, '전쟁의 긴장을 평화로 착각하는 평화'로서 군사기지가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제주도를 상상해야 된다. 내년이면 4.3도 70주년을 맞이한다. 이러한 때에 제주의 비인간적 상황을 철저히 반성하고, 제주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제주 사람들이 정하는, 제주사람들이 누리는 평화와 인권의 섬 공동체 제주에 대해 상상해야 한다. 

유엔에서 세상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선언문을 발표했듯이, 제주도에서도 제주평화인권선언이 나와야 할 때이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 이행을 위한 상설적인권기구도 설치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이 전세계에 인권적 가치를 기본적 규범으로 제공하듯이, 제주의 미래에 기본적 규범으로서 국제적 인권규범과 가치로서 인권을 적극 수용하고, 평화와 인권의 섬 공동체 제주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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