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이사 논설위원·서귀포지사장

무술년을 맞은 제주사회가 2일 새로운 출발과 각오를 다지는 시무식을 여느라 부산하다. 도내  각급 기관단체장 및 경제인 등은 어제 제주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지역경제의 힘찬 전진 및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다.

각급 기관단체가 힘찬 도약을 다짐한 것과 달리 밭작물에 생업을 의존하는 농촌경제는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것이 불투명할 만큼 혹독한 시련을 맞고 있다. 월동무·당근 등 밭작물을 수확중인 농촌경제에 '가난'의 그림자가 더 짙게 드리우면서 농가들의 가슴이 타들고 있다. 

△가격하락 농가 생존 불투명

월동무와 당근 주산지 농협과 농가들은 생산량이 증가해도 가격은 하락하는 '풍년의 역설'에 직면하자 비상품을 스스로 폐기해 시장 공급량을 줄이는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보릿고개를 걱정하고 있다. 

마늘농가들도 마찬가지다. 올해산 제주지역 생산예상량이 지난해보다 2.1%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성을 고려치 않은 농협중앙회의 계약재배 단가로 시름을 겪고 있다. 중앙회가 올해부터 전국 마늘주산지 연합마케팅에 참여하는 도내 농협에 대해 수매자금 전액을 무이자로 지원하면서 계약재배 단가를 지난해 ㎏당 3200원 보다 900원 낮은 2300원으로 권장하자 농가들의 가계살림에 비상이 걸렸다. 인건비만 1인당 9만6000원으로 급등하고, 비료·농약 등 농자재 가격 인상 따른 생산비 증가분을 고려할 때 중앙회의 권장 단가가 터무니 없이 낮다는 것이다. 

결국 도내 주산지 농협으로 구성된 마늘제주협의회가 물류비·인건비 인상 등 농가 어려움을 감안해 계약재배 단가를 ㎏당 400원 올린 2700원을 농협중앙회가 수용토록 건의했지만 도내 농업인단체들은 지난해 수준인 3200원으로 책정돼야 생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가들의 마늘 계약재배 단가 상향 요구나 월동채소 생산량 증가로 겪는 풍년의 시름은 '농사를 지을수록 부채만 늘어나는' 농촌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 통계청의 2015년 조사 결과에서도 제주지역 가구당 농가부채는 6185만원으로 소득 4381만원 보다 41.2%(1804만원)로 많는 등 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쌓이면서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

△정부·제주도·농협 반성해야 

물론 정부와 제주도정이 농민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처방책을 내놓고 있지만 헛발질에 그치면서 농가 불신을 키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제주특별법에 국비 지원 근거가 마련됐음에도 3년째 정부예산 반영이 무산되는 농산물 해상물류비다. 특히 올해 해상물류비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업임에도 미반영, 국정불신과 함께 제주도정의 중앙 절충력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함께 농협중앙회가 제주산 농산물 부가가치 상승 및 물류비 절감을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추진중인 제주권역 농산물 유통센터 건립도 속도를 내야 한다. 당초 280억원을 들여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와 저장시설 등을 갖춘 제주권 농산물 유통센터를 2015년 착공, 2018년 가동할 예정이었지만 5년째 지연되면서 제주지역 농가 소득 안정화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앙회가 계획했던 5대 권역 중 중부권·영남권이 운영에 들어가고, 강원·호남권도 올해부터 가동하는 점을 감안할 때 제주권 농산물 유통센터 건립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도내 농가의 불이익만 커질 뿐이다. 

지역농협들도 사실상 월동채소 등 주요 농산물 계통출하의 독점적 지위를 오랫동안 누리면서도 '풍년의 역설'에 대응할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감안할 때 내부 판매유통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 

우리속담에 '온전한 사람이라도 3일을 굶으면 남의 집담을 넘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농가들이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내몰리게 되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 농가 소득 안정으로 농촌경제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도·농협은 해야 할 일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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