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영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죄를 지으면 「형법」에 따라 벌을 받는다. 그뿐 아니라 이른바 '특별형법'과 행정법규 위반을 통해서도 제재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의 범죄와 제재의 수는 굉장히 다양하고 그 수도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죄목에도 불구하고 시쳇말로 대한민국에는 오직 하나의 죄목만이 있다고 하니 그 죄는 '걸린 죄'라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죄의 경중과 피해의 크고 작음을 떠나 우리나라에는 무슨 죄를 짓더라도 재수가 없어 걸리는 것이지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 미칠 해악이 얼마나 몹쓸 정도인지는 아랑곳 하지 않는 몰염치와 이기주의의 극치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도처에 불법과 규정위반이 만연한 상황이라면 그것은 이미 법과 규정이 기능부전(機能不全)에 빠진 상태이며 이는 특히 이른바 나라의 지도층이 저지르는 불법과 규정위반행위에 있어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청문회에서 촛불을 통해 이루어진 정부에서 일할 후보들의 과거지사가 범인(凡人)들이 행해도 비난받을 일을 즐비하게 저질렀음을 이미 우리가 목도하지 않았던가. 이런 마당에 일반 국민들에 대해서 준법과 규정준수를 강요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최근에 우리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제천으로부터 들었다. 대저 큰 사고에는 결코 하나의 잘못만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없다. 켜켜이 쌓인 낙엽과도 같이 중첩된 원인이 시간과 장소를 잘못 만나 참극을 만들게 된다. 주로 그 쌓이고 쌓인 원인들은 불법이 원인이고 규정위반이 요소가 되기 마련이다. 

제천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300개가 넘는 스프링클러가 하나도 작동하지 않았고 화재의 주요부인 9층 일부가 불법으로 증축됐으며 또한 소방도로에 꽉 찬 불법주차 차량이 소방차의 진입을 방해했다. 이 중 단 하나만이라도 규정대로 됐다면 아예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또는 인명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원인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걸린 죄'의 전형이다. 걸리면 재수 없다 여길 뿐이다. 건물 준공 후 스프링클러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자 누가 있으며 건물 사용 승인 후 행해지는 불법 증·개축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행태이다. 또한 불법 주정차는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언제고 필연코 또 다른 제천화재사고와 세월호사고는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무엇보다 법규의 제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법규를 지키지 않는 데는 일제 때 우국지사들이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일제침략의 첨병인 법규를 위반하고 지키지 않았다는 데 그 이유를 찾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보다는 과도한 법규가 과도한 내용으로 우리를 규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규가 우리들이 지킬 수 있는 것을 넘어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지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은 '걸린' 사람들만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필요한 곳에 최소한의 규제가 있을 때 질서유지자는 질서유지를 위한 작용을 강력하게 할 수 있다. 

또한 국가기관과 사회적 지도층들에 대해서는 더욱 엄정하게 법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의 비위행위를 보며 법은 저들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에게만 엄격하다는 우리들의 비관적 시선이 없지 않다. 사정기관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 정의의 칼춤을 출 때 비로소 법규는 우리에게 의미로서 다가온다. 그렇지 않으면 법규는 단지 재수 없이 걸린 사람에게만 엄혹하게 작동하는 불필요한 사회적 액세서리가 될 뿐이다. 

무술년 한 해가 밝았다. 이제는 '걸린 죄'가 사라져서 참혹한 사건들이 과거의 일들로만 그래서 교훈으로만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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