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병찬 서예가·논설위원

어느 시인의 시 구절에서 '비록 회색의 수채화일지라도 도시는 살아 있음에 아름답다'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얽히고 설키고 복잡하고 분주했던 회색의 수채화 같은 정유년이 저물고 새로 황금색 무술년이 왔는가 했더니 벌써 한 달이 지나는 요즘 새 희망을 앞세운 설맞이 마음으로 들떠 있는 듯 해 평창 동계 올림픽과 함께 즐거움이 있음을 기다려 본다.

오늘도 나는 '먹의 세계에서 예술성의 진미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신 해정 박태준 선생님 유묵 우기청호(雨奇晴好) 앞에 섰다. 날마다 보는 작품이지만 필가묵무(筆歌墨舞)다운 힘찬 필력과 함께 좋은 일이 있으라는 축하의 글이라서 더욱이 새해 새아침을 열어주는 듯 새롭고 자랑스러움을 느껴본다. 이는 사자성어에 나오는 말로 비가 올 때나 날이 개었을 때나 언제 보더라도 좋게 보이는 경치같이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와서 제 맛이 있고 맑은 날은 맑아서 좋은, 그래서 언제든지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라는 뜻을 일러주신 주옥같은 작품이라서 선생님의 가르치심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스려본다.

이제 희수가 지나고 산수에 막 다가선 나이에 38년 전 선생님 앞에서 투덜거리며 붓과 씨름하던 시간, 작품을 쓴다고 밤잠을 설치며 먹통에서 헤매던 시절을 회상하다보니 연암 박지원 선생의 시 '설날 아침에 거울을 보며'가 떠오른다. '어허, 수염발이/ 희끗거리네./ 키는 작년과 다름없는데,/ 얼굴은 해마다 달라지는군./ 그래도 설날은/ 어려만지네'.

흔히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영선반보(領先半步)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반걸음만 앞서나간다' 라는 말과 같이 여러 걸음 빨리 앞서나가려는 욕심이나 게을러서 뒤쳐지는 것도 아닌 꾸준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반걸음씩만 앞서나간다'는 정신으로 생활한다면 이게 매끄러운 성공의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제주속담에 '게염지 좁   방울 물어오듯 한다'라는 말이 있다. 한꺼번에 큰 재물을 얻으려고 욕심 부리기보다는 꾸준히 조금씩 불리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겠다.

법구경에 '마음은 모든 것을 만들고 다스린다. 나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끌고 가는 마소 뒤의 짐수레처럼 괴로움이 그 뒤를 따르리라. 깨끗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형체에 따르는 그림자처럼 즐거움이 그 뒤에 있으리다'라는 경구가 있다. 새해가 되어서 누구나 경험해본 작심삼일의 구상이 될지 모르지만 큰 욕심 없이 꾸준한 삶의 설계로 한 해를 다짐해보는 것도 좋겠다. 평소 좋아하는 이채님 시 "비우고 낮추는 삶은 아름답습니다."를 다시 읊어본다. 불만은/ 위를 보고 아래를 보지 못한 탓이요/ 오만은/ 아래를 보고 위를 보지 못한 탓이니/ 이는 곧/ 비우지 못한 욕심과/ 낮추지 못한 교만으로부터/ 자아를 다스리는 슬기가 부족 한 탓 이리/ 지혜로운 자는/ 남보다 내 허물을 먼저 볼 것이며/ 어진 자는/ 헐뜯기보다 칭찬을 즐길 것이며/ 현명한 자는/ 소리와 소음을 가릴 줄 알 것이로되/ 반듯한 마음 옳은 생각으로/ 곧은 길, 바른길을 걷노라면/ 뉘라서 겸손의 미덕을 쌓지 못 하리오/ 뉘라서 덕행의 삶을 이루지 못 하리오/ 마음의 평화는 비움이 주는 축복/ 영혼의 향기는 낮춤이 주는 선물이니/ 비우고 낮추는 삶은 곧/ 내 안의 천국을 가꾸는 일입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말로는 멋있고 쉬워 보이나 실지 몸과 마음으로 실행함은 참으로 어렵다. 마음을 비우면 여유가 있고, 평화가 있고 행복이 있다.

2월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이 있다. 세계의 젊은이들 함성소리가 평창에서 크게 울려 퍼지는 날이겠다. 우리 선수들은 열심히 준비한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다. 더불어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 아름답고 열정 있는 나라로 더 많이 알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날마다 좋은 날, 오늘도 좋은 날이기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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