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인문학 詩네마 토크 (3) '에밀리 디킨슨'을 읽다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의 '조용한 열정'.

에밀리 디킨슨의 사소한 일상·솔직한 감정 표현
억압받아온 여성의 삶·시인으로서의 여성에 주목

설명절이라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반갑기도 하고 더러 서먹하기도 하고 애틋함과 짜증스러움이 뒤섞인 복잡오묘한 감정들을 경험한다. 가족이기에 가능한 감정이기도 하다. '따로 또 같이' 사는 가족들이기에 더욱 만족스러운 소통을 기대하는 건 과한 욕망인 듯 하다.

그래도 올해는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경기에서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바람에  속시끄러운 얘기들이 기를 못펴고 뒤로 물러나는 행운이 있기도 하였다. 얼굴 붉히면서 그릇 내려놓는 소리 크게 들리다가도 금세 TV 화면에 빨려들어 절로 몸을 움찔거리며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모습들을 보며 '가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가족 안에서 머물다 고독하게 죽어간 한 여인을 생각한다.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다. 

에밀리 디킨슨 (Emily Elizabeth Dickinson, 1830년~1886년)은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州)의 애머스트 출신의 시인이다. 일반적으로 그녀를 지칭해 '뉴잉글랜드의 신비주의자' 혹은 '운둔 시인'이라고도 한다. 생전에는 크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녀의 시는 다분히 신비주의적이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운율과 압운을 자류롭게 실험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는 재능을 알아본 소수의 시인과 지식인에게 편지를 통해 전해졌다.   
에밀리는 생전에 딱 7편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사망 후 그녀의 서랍에는 거의 2000여편에 가까운 시원고가 있었다. 평생 애머스트를 떠나본 적이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가족과 함께 고독하게 살다가 죽었다. 영화 '조용한 열정'(2017)이 에밀리 디킨슨의 일대기를 비롯 그녀의 시를 아름다운 영상에 담아 소개하고 있다. 

'조용한 열정'은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의 또다른 여성영화다. 에밀리 디킨슨의 유년 시절부터 죽음까지의 일대기를 담아내고 있다. 일반 전기영화와 다른 면이 있다면, 서사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적 영상, 진실한 압축미를 최대한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에밀리 디킨슨은 말한다. "시라면 진실을 압축해야죠."라고. 그녀의 묘비명도 한 편의 시다. "called back"(불려갔음)! 이 얼마나 진실한 압축미인가. 

영화 '조용한 열정'은 에밀리 디킨슨의 홀리요크 학교 생활에서 시작한다. 2학기가 끝났을 때, 교장은 학생들에게 크리스천이 돼 구원받고자 하거나 구원받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분류해 왼편과 오른편에 서게 한다. 에밀리 디킨슨은(신시아 닉슨 역)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채 교장과 마주한다. 결국, "거룩하신 하나님께 맞선 죄인인 넌, 비난 속에 불타는 지옥에 갈 것이다."는 저주의 소리를 듣는다. 그 뒤로 이어지는 장면, 카메라는 에밀리 디킨슨의 등을 비추고 그녀는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어떤 희망 같은 것, 그녀가 구원의 손길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에밀리 디킨슨의 목소리로 시 한편이 흐른다. "모든 황홀한 순간엔 고통이 대가로 따른다"는. 그리고 쾅쾅! 문이 열린다. 물론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은 가족이다. 문이 열리면서 가족들(아버지가 오빠, 여동생)의 환한 모습이 보인다.  

영화에서 별다른 서사는 없다. 에밀리 디킨슨의 사소한 일상과 솔직한 감정 표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극적인 사건이 있다면 친구 오빠 오스틴의 바람(오빠는 친구수잔과 결혼했다)과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과 죽음일 것이다. 영화에서 에일리 디킨슨이 가장 격하게 반응하는 부분은 오빠의 불륜이다. 그것은 그녀의 무의식을 대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당시의 여성에 대한 억압적 환경이 그녀에게 부당함과 억울함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기숙학교의 종교에 대한 강요, 아버지의 권위의식, 결혼생활이 여성에게 부여하는 의무와 기대 등은 순수하고 예민한 감성을 지닌 그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고 그냥 가족에 머물며 시를 쓰는 삶을 선택한다.

에밀리 디킨슨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을 해본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도 사랑에 대한 들끓는 열정이 있었다. 영화에서 에밀리는 "동물학과 영적인 것에 관심 있는 남자면 결혼할 수도 있지."라는 표현을 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는 남자라면 결혼 또는 사랑을 거부할 의사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남자가 바로  찰스 워즈워스라는 유명한 목사이다. 유부남 목사에게 마음을 품는 것는 당대 상황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에밀리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시를 모아 손으로 꿰맨 소책자를 만들어 목사에게 건넨다. 목사가 저 편으로 가 시를 읽을 때 에밀리의 표정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등 온갖 마음의 소리들이 수런대면서 카메라는 그녀의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이그녀의 표정에서는 설레임, 두려움, 불안함이 역력하다. 그리고 숨죽여 묻는다. "제 시 쓸만한가요?"라고. "훌륭해요. 단호하긴 하지만 완벽해요."라고 목사는 대답한다. 유일하게 에밀리의 시를 알아봐준 독자인 셈이다. 

에밀리 디킨스에게도 욕망이 있었다. "사후의 명성은 생전에 무명인 사람들의 것이 잖아요. 죽기 전에 인정은 받고 싶어요."라는 그녀의 고백에서 알 수 있다. "성공 때문에 괴로워하다니"라며 얼른 주워담긴 하지만 그녀는 시인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당대에 여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결혼이었다. 아무리 여성의 현실에 대해 자각한 여성이라 할지라도 결혼을 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가을에 그대 오신다면 여름은 훌훌 털어버릴래요/미소와 콧방귀로 파리를 쫓듯/일년 뒤 그대 오신다면 각 달을 공처럼 말아/서랍에 넣을래요. 때가 올 때까지/만약 더 늦어진다면 손 위에서 셀게요/그러다 손가락이 나락에 떨어질 때까지/만약 이 생이 끝나고 당신과 함께할 수 있다면/이 생은 벗어버리고 영원을 맛볼래요.(에밀리 디킨슨의 시, 「가을에 당신이 오신다면」 부분)

에밀리 디킨슨이 평생 천착한 문제는 영혼과 죽음의 문제이다. 새벽에 일어나 홀로 마주한 시간에 찾아드는 고요와 침묵, 고통의 신음소리(어머니는 우울증을 앓다 돌아가셨다), 달과 별의 나타남과 사라짐, 햇살의 응집과 흩어짐… , 이 모든 것은 어떤 영혼의 빛깔이라고 그녀는 믿었다. 그리고 온전하거나 완전함, 영원할 수 없음에 괴로워했다. 그것이 생의 진실이며 우주의 원리라는 것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기에는 그녀는 너무도 인간적이었다고 할까. 

평생 가족과 집에 갇혀 산 에밀리 디킨슨, 가족과의 남다른 친밀함이 오히려 이별과 죽음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몸에 새기게 된 것이 아닐는지. 그녀에게 유쾌한 말벗이 되어주었던 친구 브라일링 버펌(캐서린 베일리 역)이 결혼하게 되자 에밀리는 슬픔에 젖는다. 소수와만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그녀에게 이별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하지만 새벽녘에 혼자 촛불 아래서 시를 쓰는 유일한 기쁨이 있었기에 저주와 같은 생의 고통을 간신히 이겨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녀의 말처럼, "구제불능에게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선물."이 바로 시였던 것이다.  

'조용한 열정'은 한마디로 시인에 대한, 시같은 영화이다. 시적인 영상으로 주목받아온 테렌스 데이비스의 2017년 작품으로 억압받아온 여성의 삶, 그것도 시인으로서의 여성에 주목한다. 아무도 안 읽는 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삶에 대한 애도의 영상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사후의 명성은 생전에 무명인 사람들의 것이 잖아요."라고 말하던 에밀리 디킨스의 씁쓸한 표정이 오래 남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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