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종호 제주특별자치도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제주에 내려온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그동안 보아온 제주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한라산, 거리마다 피어오르는 꽃망울.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제주의 풍경이다. 그리고 지방선거가 90일 앞으로 다가온 요즘, 제주의 선거문화에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괸당문화. 소위 육지것인 나에게 괸당문화는 매우 신기하게 다가온다. 더구나 '이당 저당 해도 괸당이 최고다' 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만큼 선거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화라 더욱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이제 90일 후면 우리 동네의 대표자를 뽑는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의 괸당문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제주에서는 음식점을 가더라도 웬만하면 우리 괸당이 운영하는 집으로 가려고 한다. 또 투표를 하더라도 웬만하면 우리 괸당을 뽑으려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고향과 출신학교 정도만 말해도 서로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형 또는 아시(동생), 삼촌 아니면 조카가 된다는 제주사회에 어찌보면 당연한 문화가 아닐까 하고 생각되어지지만 한편으로는 혈연, 지연만을 우선 시하는 부정적인 측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제주지역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괸당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선거를 치를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정책선거를 제시하고 싶다.

사실 선거 때마다 혈연·지연을 타파하고 '깨끗한 선거' '정책선거'를 하자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는 괸당문화가 발달한 제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행정기관, 언론, 시민사회 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정책선거를 이야기 한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이는 선거 때마다 지역경제 활성화, 청년 일자리 창출, 교육비 부담 해소, 사회복지 서비스 확대 등 수많은 정책과 공약이 쏟아짐에도 지금 우리의 삶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정책선거를 다짐했던 이들도 다시 혈연·지연과 같은 연고주의, 즉 우리 괸당을 선택하는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악순환 근절을 위해서라도 정책선거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지방선거에 괸당문화가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그 필요성은 절실하다.

이를 위해 우선 후보자들은 선심성 공약이나 보여주기 식의 공약이 아닌 실현 가능하고 명확한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 지역의 현안은 무엇인지 도민들은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실천 가능하고 필요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유권자는 후보자가 제시하는 정책과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이행이 가능한지, 재원은 충분한지 등을 확인한 후 후보자를 선택해야 한다. 더 나아가 유권자 스스로 지역 문제에 대한 담론의 장을 만들어 후보자에게 정책과 공약을 제시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선거의 실현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반드시 실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지방선거는 정책선거를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제 지방선거가 정확히 90일이 남았다. 

혹자는 제주의 괸당문화는 고려말기  '삼별초 항쟁'이나 '제주 4·3사건' 등 제주의 아픈 역사 속에서 생존을 위해 생겨난 문화라고 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만들어낸 괸당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혈연·지연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배척하고 싶지 않다. 괸당문화가 주는 의미와 순기능은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다. 

어려운 시절 제주에서 괸당문화가 탄생했듯이,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정책선거가 실현되고 우리 동네를 위한 제주만의 아름다운 선거문화가 탄생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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