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장 대우

최근 우리 사회에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로 인해 '펜스룰'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펜스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02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른바 미투에 대처하는 남성들의 행동 규칙으로 여성과의 접촉을 피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는 불상사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회식을 줄이거나 출장은 동성끼리 가거나 하는 방식이다.

이런 펜스룰이 회자되는 밑바탕에는 괜히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있다.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성적 수치심이라는 주관적 판단이 기준이 되는데 입증이 곤란해 허위신고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가해 행위를 피하기 위한 고육책으로써 펜스룰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실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남성을 성폭행 가해자로 신고해 놓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빠져 나가는 여성들의 사례가 늘고 있다"며 무고죄의 형량을 높여 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3년간 대검찰청 범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성범죄 피의자 중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은 비율은 20% 내외로 나타났다. 혐의없음이 곧 허위 신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증거가 부족한 경우에도 혐의없음 판단이 내려지기도 한다. 2016 대법원 사법연감 자료에서도 강간 및 추행 관련 사건은 5618건으로 나타났는데 이중 1심 무죄 판결은 192건으로 3.4% 정도를 차지했다. 이러한 통계에 따르면 여성이 허위 신고를 남발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펜스룰이 확산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일할 기회가 박탈당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허위 신고가 두려워 여성과의 접촉을 차단한다는 펜스룰은 또 다른 여성 혐오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요즘 같아서는 자고나면 쏟아져나오는 미투 폭로에 뉴스 보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정치가와 예술인들이 하루아침에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국민들에게 상처와 실망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혼란은 보다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말이 있다. 펜스룰을 넘어 성평등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새로운 룰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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