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인문학 詩네마 토크 (5) 시와 영화의 상호텍스트성

영화 '지슬'.

하나같이 슬픈 비애감과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
제주 사람들 몸에 새겨진 아픔들, 몸의 언어로 발화

역사는 어떻게 기억되고 재구성되는가. 그것은 아마 공적 기록이 남긴 역사적 자료와 구술, 문학 작품, 영화, 그림 등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통해서일 것이다.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가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등 영상 자료에 한정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광의의 범위에서 이해한다면 이야기, 즉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식은 구술에서부터 문학작품,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통 행위를 총칭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무의식과 욕망의 발현에 의해서 진화한 것이라면, 그 안에는 '이야기'가 있다. 즉 인간의 무의식과 욕망은 이야기 속에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서 발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이야기하고 싶어할까. 그것은 존재에 대한 물음과 해명에 대한 욕망에 근거할 것이다.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철학의 주된 담론이었다면 실존적 담론은 역사가 될 것이다. 역사는 다양한 예술, 문학 작품을 통해 재구성, 재창조되면서 인간을 비롯한 이 세계의 실존적 문제들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고 있다. 4·3은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제주사람의 근원적 상처라 할 수 있다. 시기가 그래서그런지 4·3 사건을 다룬 영화들을 새롭게 살펴보게 된다. 지금까지 4·3을 다룬 영화는 <지슬>(2012), <비념>(2012), <오사카에서 온 편지>(2017) 등이 있다. 이 영화들은 4·3을 사실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나같이 슬픈 비애감과 더불어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들이다. 

오멸 감독이 제작한 영화 <이어도>(2010), <지슬>(2012)은 모두 제주 4?3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어도>는 젊은 해녀 영이의 삶을 흑백으로 그리고 있다.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고, 김을 매고, 물질을 하고, 아이를 잠재우는 등의 거의 대부분 사소한 영이의 일상을 비추고, 그 배경 속으로 파도 소리, 바람과 음악이 흐를 뿐이다. "소리 역시 눈으로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했다."는 오멸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말이 없고, 소리만 있다. 그리고 이미지로써 말을 한다. 어떤 불길한 예감 같은 것, 위기감 마저도 이미지로 보여줄 뿐이다. 예를 들어 영이가 군인 2명과 마주치는 순간, 화면은 2~3초간 암전, 음악도 끊긴다. 그 후로 그녀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영이가 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지막 8분 동안 길게 시와 함께 흐르는 음악이 그녀의 말을 대신해준다. 

음악과 함께 흐르는 시는 고정국 시인의 시집 『지만 울단 장쿨래기』에 나온 시편들이다. 아기를 혼자 키우는 해녀 영이의 일상을 그린 영화라고 착각할 만 한 것을 엔딩 장면에 흐르는 음악시로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잠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제주 4·3 사건이 미군·경찰의 일방적인 소개령에 의해 수많은 민중들이 학살당한 사건이기에 민중의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이에 영화는 극단적인 침묵으로 고통의 극대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 아이의 이름은 '이어도'이다. '이어도'는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희망의 공간이다. 제목에 감독이 의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에 비해 <지슬>은 4?3 사건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에 모티브로 삼은 것이 '지슬'이다. 제주 4·3건이 영화에서 '매인 포티브'라면, 지슬은 '놓인 모티브'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지슬은 마을에 소개령이 내리자 군·경의 공격을 피해 산 속으로 도망간 사람들이 임시 먹을 양식으로 챙겨간다. 영화 속 인물 무동이 어머니가 산 속으로 피신해가는 아들에게 건네기도 한 것이 지슬이다. 영화에서 지슬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챙겨가는 음식으로, 자식을 생각하는 희생물로, 공동체를 지켜주는 생명줄로, 자식을 위해 남겨준 유일한 사랑으로 상징되는 모티브로 사용된 것이다. 

 산더래/ ?르카/ 바당더래/ ?르카
 동카름/ 누게네 집산디/ ?대왓디/ 불 붙어네
 저무랑/ ?작지멍/ 따발총을/ ?겼젠.
                               「산더레 ?르카 바당더레 ?르카」 전문

 산으로 튈까, 바다 쪽으로 도망칠까
 '동카름' 누구집인지 '왕대밭'에 불이 붙어
 온종일 마디가 터지며 따발총을 갈겼대.

 앙크래영/ 쉐막이영/ 감자구뎅이/ 다 카부난
 ?생인/ 녹대 끈언/ 올레터레/ ?라난 살국
 쉐막이/ 나릅 부렝인/ ?들랑거리단/ 죽어네마씀. 

                        -「?들랑거리단 죽언마씸」전문 

 안채며 외양간이며 고구마구덩이까지 다 타버리고
 망아지는 줄을 끊어 집 밖으로 도망쳐 살고
 외양간 '나릅부렝이'는 바둥대며 죽었더랍니다.

 ?썰 시난/ 우리 어멍/ 카분 감저구뎅이/ 헤싸그네
 ?싹허게/ 익은 감저/ ? 질구덕/ 담안 와네
 사름덜/ 그 감저 먹으멍/ 눈물작박/ 했덴마씀.
                             -「?싹허게 익은 감저」 전문

  좀 있자 우리 어머니 타버린 감자덩일 파헤쳐서
  잘 익은 감자 한 바구니 담고 와
  사람들 그 감자 먹으며 눈물 깨나 흘렸답니다.

고정국 시인의 시조집 『지만 울단 장쿨래기』 1부 전체는 4?3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불 타버린 감자(지슬)', '제삿날', '총 맞은 마을 사람' 이야기가 일련의 서사를 이루고 있다. 시집은 영화보다 8년 앞서 출판되었다. 이에 영화는 시집에서 묘사된 정황들과 모티브를 일부 차용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감독이 이를 의도적으로 차용하고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지만 전작 <이어도>에 고정국 시인의 시가 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의도했든 아니든 '놓인 모티브' 차원에서 영화가 이를 수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고정국의 시집, 『지만 울단 장쿨래기』와 영화 <이어도>, <지슬>은 상호텍스트적 성격을 갖는다. 『지만 울단 장쿨래기』와 <지슬>은 제주 사람들을 위한, 제주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전하기 위해 상호참조한 텍스트라는 것이다. 또한 영화와 시집의 공통점은 제주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자막은 영어와 표준어 자막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제주어를 고스란히 사용하고 있다. 시집도 마찬가지로 제주어로 쓰여졌으며 각주로 표준어 해설이 첨부되고 있다. 제주사람들의 이야기, 정서를 가장 적확하게 담아낼 수 있는 건 제주어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들은 영화 <지슬>을 보면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슬픔과 격정, 분노의 감정을 느끼면서 느끼게 된다. 만약에 제주어가 아닌 표준어로 영화 대사가 처리되었다면 이를 보는 제주 사람들은 뭔가 어눌하고 적확하지 않은 표현들로 인해 오히려 답답함과 씁쓸함, 극단적으로는 모멸감 같은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주인의 삶과 역사는 제주어로만 기술 가능한 지점이 여기에 있다. 

제주어야말로 제주 사람들에게 각인된 몸의 언어이다.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4·3'이라는 제주 사람들 몸에 새겨진 아픔은 몸의 언어로 발화함으로써 제주인의 정체성 회복과 치유 가능 하기에 '제주어'의 선택은 최선이었다는 것이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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