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제주한라병원장

'연명의료 결정법'이 지난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은 적극적 치료에도 호전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경우 본인의 희망에 따라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품위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제정됐다.

하지만 절차의 복잡성과 시스템 미비 등으로 의료진은 물론이고 환자 및 보호자에게도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심폐소생술거부(DNR)를 둘러싼 논란과 함께 법정서식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다. 의료진이 연명의료 중단과 관련한 규정을 위반한 경우 처벌규정에 대해서도 논란의 소지가 많다. 

이런저런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다 보니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방어진료의 빌미가 되어 도리어 연명의료를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법안 마련에 앞서 정부는 의료계·윤리계·법조계·종교계·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사회적 협의체를 통해 중지를 모은 바 있다. 이어 협의체서 나온 의견을 토대로 국회는 오랜 논의 끝에 이 법안을 마련했다. 2016년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2년동안 준비기간을 거치기도 했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연명의료결정법이 도입됐지만 의료계나 환자측이나 별로 달갑지 않은 반응이다.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서둘러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법 시행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기서 이 법의 탄생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과 지향하는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연명의료법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지난 2009년 김모 할머니 사건이 있고 나서였다. 

당시 고령의 김모 할머니는 폐부종 등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의식불명상태에서 4개월여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생명을 연명해왔다. 이에 가족들은 영양공급 중단과 응급심폐소생술 시행금지 가처분신청과 함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고, 이 소송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국내 첫 존엄사 판결이 나왔다.

당시 대법원은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라고 봤다.

따라서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결함으로써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사회적 담론에 불씨를 붙였다.

이후 근 10년 동안 사회적 논의와 합의의 결과로 환자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자기결정권 등 당시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담은 연명의료결정법이 탄생됐다. 

하지만 아직도 종교계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고, 환자 및 보호자 측과 의료계의 입장도 서로 엇갈리는 등 난제가 많아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기본원칙(존엄사 인정)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만큼 정부와 국회는 이 법의 시행 취지와 현실과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의료계와 환자 및 보호자들의 합리적인 목소리를 좀 더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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