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면 어제 아이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무척 궁금하다. 그 궁금증은 한 곁 한 곁 꼭꼭 숨어있는 일기 속에서 술술 풀려 나간다. 한 여자아이의 일기를 읽으면서 뜨끔 하는 마음으로 내 자신을 반성해 본다.

‘우리 선생님은 눈이 어두워지셨다. 왜냐하면 우리가 선생님 말씀을 안 들어서이다. 우리 선생님이 많이 화나셨다. 중요하다고 한 과제를 해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선생님 눈은 내일도 또 어두워지실까? 정말 속상하다. 내일은 우리 선생님 눈이 초롱초롱 해야 하는데. 우리 선생님 얼굴도 반짝반짝해야 하는데…’

 학기초라서 새로 부임한 학교 생활에 적응하랴, 함께 생활 할 들꽃반 아이들을 꼼꼼히 파악하느냐 바빴다. 다행히 새로 만난 아이들이 순해 보이고 믿음직스러웠다.

 어제 있었던 일이었다. 아이들과 공부하면서 과제 낸 것을 하나 하나 챙기다가 많은 아이들이 과제를 안 해와서 무척 속상했다. 일주일 전부터 과제를 내 주면서 꼭 해와야 공부를 재미있고 흥겹게 할 수 있다고 채근도 했었다. 화를 내고 아이들을 돌려보낸 뒤에 내 마음도 무거웠다. 사실 아이들 모습을 세세히 파악하지 못한 채 너무 아이들 힘에 버거운 과제를 냈던 내 실수를 인정하기 전에 아이들에게만 꾸중한 것이 잘못이었다. 아이들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 한 내 탓은 하지 않고 나무랐던 것이었다. 그들이 달려온 무수한 길들을 하나의 출발선 위에 빨리 모아 놓으려고만 했다. 무작정 높은 산을 향하여 질질 끌고 올라가려고만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선생님이 속상해 하는 마음을 "눈이 어둡다"고 표현은 했지만 정말 이 친구 생각처럼 선생님 눈이 어두워져 버린 것일까? 아닌 것이다. 내 생각엔 아이들 마음을 얼른 읽을 수 없어져버린 교사를 표현한 것 같아서 더욱 쑥스러웠다. 일기를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지금 온 들과 야트막한 산 오름에는 꽃망울이 새롭다. 온갖 들꽃들은 저마다 따뜻한 햇살 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뽐내려고 기지개키며 선보이는데 나는 아이들이 해보려는 마음을 사정없이 싹둑 잘라 버린 것 같아 무척 미안했다. 수줍고 자그마한 잎사귀로 어눌한 모습으로 선 아이들을 좀더 넉넉한 마음으로 꼭 안아주려는 자세가 부족했던 것이었다. 우리 반 아이가 바라는 모습으로 "우리 선생님 눈이 초롱초롱 해야 하는데. 우리 선생님 얼굴도 반짝반짝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마음으로 만나는 들꽃무리처럼 진정으로 아이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날을 늘 맞이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우리 아이들 들꽃무리 속에서 멀리 보이는 잔잔한 바닷가 물결과 어우러져 "초롱초롱, 반짝반짝"의 두 숨죽인 낱말을 늘 간직하며 지내련다. 또한 교사 자신의 잘못을 뒤돌아보게 해준 소중한 수줍은 들꽃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련다.<정성진·남원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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