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혜영 시인 첫 시조집 「하나씩 지워져 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어느 조직의 일원이 되고, 한 사람의 아내에서 또 누구의 엄마가 된 정형화한 과정을 벗어나면서 써내려간 글은 산 정상에서 숨을 돌리고 내려가는 길처럼 편안하다.

지적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들의 글에서 세상을 읽었던 엄마는 그로 인한 상처를 감수했던 딸을 품으며 자신의 가슴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기 시작했다. 고혜영 시인의 첫 시조집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하나씩 지워져 간다」는 제목은 어쩌면 반어적인지도 모른다.

엄마 보다 먼저 시집을 낸 아들이 말했다. “오늘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텃밭에 돌 발판을 세웠다/흙속에 바퀴가 굴러가는 것 같다//저 동그라미처럼/엄마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이승일 ‘엄마’)고. 그리고 엄마는 말한다. “워킹 맘 슬픈 속내 대물림이 되는구나/출산휴직 끝낫다며 출근하는 뒷모습 건너/할머니 두 살 난 아기/울음 섞인/목소리”(겨울걷기 6).

시인은 굳이 멀리 보지 않는다. 평생 물질로 가족을 건사했던 어머니와 자신처럼 엄마가 된 딸을 함께 본다.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더 알고 채워야 할 것들이 즐비하다. 역광으로 보듯 분명하지 않은 실루엣이지만 그만 알 것만 같다. 동학사.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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