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원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논설위원

사마천은 「사기(史記)」를 저술하면서 다섯 명 자객들의 이야기를 모아 「자객열전(刺客列傳)」을 따로 구성해 역사로 남겼다.

'자객'은 '어떤 음모나 남의 사주를 받고 사람을 찔러 죽이는 사람'이다. 사전적 의미로만 자객을 평가하자면 결코 「사기」의 「열전」에 들어 있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중국에서는 의리 하나만으로 혈연보다 더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부류를 흔히 임협(任俠)적 집단이라고 정의한다. 이 임협적 집단 속에는 호방하고 의협심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유협(遊俠)과 자객(刺客)이 모두 들어간다. 유협(遊俠)은 달리 협객이라고도 한다. 표면적인 의미로 보아 유협은 사람을 몰래 암살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인 자객과 큰 차이가 있지만 실제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유협과 자객 모두 '협객'이란 뜻으로 함께 쓰였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도대체 어떠한 의미에서 어떠한 관점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 뻔한 부류에 속하는 이들을 역사로 기록했을까. 사마천은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말(曹末)부터 형가(荊軻)에 이르기까지 다섯 사람의 자객들은 그 의협심이 혹은 성공하기도 했고 혹은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매우 분명했고 자신들의 뜻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니 그들의 이름이 후세에 전함이 어찌 망령되겠는가?" 

이렇듯 역사로 기록한 자객에 대해, 사마천은 그들의 목적과 뜻이 분명했고 그 뜻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며 후세에 전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에 관계없이 사마천이 그들의 의협심을 높게 평가했음을 알 수 있다. 「사기」의 「유협열전」에서는 유협에 대해서도 "… 그 행위가 반드시 정의에 의거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말에는 반드시 신용이 있었고 행동은 과감했으며 이미 승낙한 일은 반드시 성의를 다했다. 또한 자신의 몸을 버리고 남의 고난에 뛰어들 때에는 생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고 그 공덕을 내세우는 것을 오히려 수치로 삼았다. 아마 이밖에도 찬미할 점이 많을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유협열전」과 「자객열전」을 통해서 우리는 중국 고대사회의 관계질서를 반추해볼 수 있다. 나라의 혼란이 가중되면 될수록 힘없는 백성들의 고통이 가중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국가에서는 이들을 보호해 줄 힘이 없으며 힘없는 이들은 스스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이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임협적 집단 속에서 사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역사서들은 권력을 가진 제후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 혹은 청렴결백과 인의(仁義)를 중시한 선비를 중심으로 기술된 책이 많다. 그래서 「사기」 속의 「열전」이 어쩌면 더 주목을 받는 지도 모르겠다. 유협과 자객의 이야기를 보아 알 수 있듯, 많은 역사가들이 외면하고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그 속에서 다루고 있으니까. 도덕적 가치관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겠지만, 혼란한 시대 속에서 민중의 편에 서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역사가는 평가할만한 가치를 보았을 것이다.

6월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지금, 단식투쟁을 벌이던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일반시민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답답함을 이어가던 정국(政局)을 더욱 숨 막히는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가 주장하는 바도, 피해를 당한 쪽에서 주장하고 싶은 정치테러라는 논지도, 향후 역사가는 물론이고 일반시민들에게조차 역사가 사마천이 그 의미를 남기고자 했던 '협객'과 '자객'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못하는 가치 없는 평가만을 받을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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