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중등국어교육연구회(회장 김경도)가 주최하고 제주도교육청·제민일보사(대표이사 사장 김영진)가 후원한 '제29회 전도 중·고등학생 한뫼 문학백일장'이 지난 2일 탐라중에서 열렸다.
도내 중·고등학생 241명이 참가한 이번 백일장은 학교급별로 운문 부문과 산문 부분으로 나뉘어 중학교부는 '빛, 실', 고등학교부는 '물, 숨'을 제재로 진행됐다.


<고등학교부 산문 최우수>

'글의 숨결'        서귀포여자고등학교 2학년 1반 장효경

글을 쓴다는 건, 한낱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차갑고 무정한 단어들에 필자의 숨을 불어 넣는 일이다. 글을 쓸 때, 나는 창조주가 되고, 내가 쓴 글들은 하나의 생명이 되어 내 마음 속에 둥지를 튼다. 마음을 울리는, 좋은 글들은 이따금 삶 속에서 기억되고 생각나고 여러 번 곱씹어진다. 글은 숨을 쉰다. 우리 주변 곳곳에서.

어렸을 때 나는 도서관에 가는 게 좋았다. 도서관 입구에 첫 발을 디디면 느껴지는 따스하고 보드라운 책의 숨결들은 나를 행복감에 젖어들게 했다. 연노랑빛 폭신한 소파에 앉아 쿱쿱한 종이 냄새가 물씬 나는 책을 한 장 두 장 넘기고 있으면 시계의 분침은 나 몰래 달리기를 시작하곤 했다. 그 소파는 나와 다른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가 되어주었고, 나는 세상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책과 숨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키가 더 자라고 발이 더 커진 채로 접한 세상은 나에겐 불이 꺼진, 촛불 하나 없는 방이었다. 사람들은 정제되지 않은, 딱딱하고 날카로운 숨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책의 기분 좋고 몽실몽실한 숨과는 달랐다. 잘 선별되고 여러 관문을 거친 언어들을 접하던 세계는 말 그대로 꿈의 세계였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나에겐 어려운 과제 같았다. 그런데 글쓰기는 달랐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나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잘 갈고 닦은, 둥근 조약돌을 하나 두 개씩 집어서 예쁘게 늘어 놓는 기분이었다. 그런 조약돌들에 하나하나 숨을 불어 넣어 생명으로 빛나게 하는 기분은 짜릿한 것이었다. 쟤 말 없어, 이런 말들을 듣던 나는 내 글 속에서 언어들과 왁자지껄하고 신나는 대화를 나눴다. 나는 커서도 여전히 책이 좋았다. 내가 할 수 없는 표현들과 형이상학적 세계의 무언가들로 가득찬 종이들의 하모니는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책의 세계에서 언어를 배우고 익혔다. '말'끼리의 대화가 아닌 '숨'끼리의 대화를 했다. 나는 학생이 되기도 하고 선생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현실 세계의, 회색빛 탁한 숨들의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음 깊은 곳 저장해 놓은 책들과의 대화를 현실에서도 차근차근 꺼내는 걸음마를 해내야 했다. 

천천히 느리게 시작해 나갔다. 어느 시점에선가 나는, 어쩌면 말과 글은 비슷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 시점부터 점점 대화가 즐거워졌고, 사람들의 탁한 숨을 조금은 맑게 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글쓰기는 나의 취미이자 나와 함께 걷고 달리고 숨을 쉬는 동반자이다. 힘이 들고 지칠 때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책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부드럽고 따뜻한 글의 숨결은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꼭 안아주는 힘이 있다. 

나도 좋은 글을 써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글이 사람들과 아름다운 숨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릴 적 내가 받은 그 행복감을 그대로 내 글에 불어 넣고 싶다. 글의 맑고 푸른 숨결이 세상으로 널리널리 퍼져 이 세상의 탁한 공기가 투명하고 아름다운 빛깔을 띠는 숨결로 변화하기를 소망해본다.


 <중학교부 산문 최우수>

'엮인 실'          오름중학교 3학년 6반 박주은

"오빠들을 인간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저기 있는 가시가 난 풀을 엮어 실을 만들고 그 실로 조끼를 떠서 입혀야 한다."

요정에게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음씨 착한 공주는 나쁜 마녀의 저주에 걸려 백조가 되어버린 오빠들을 위해 손에 피를 흘리며 조끼를 만들기 시작한다. 한창 만들던 도중 옆 나라의 왕의 눈에 띄어 그대로 끌려가서도 뜨개질을 멈추지 않는다. 요정과의 약속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었던 공주는 결국 가시풀을 얻으려 묘지에 갔다가 마녀로 오해받고 화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공주는 화형식 당일 수레 위에 앉아 화형장으로 끌려가는 도중까지도 뜨개질을 하다가 결국 마지막 조끼의 한쪽 소매를 완성하지 못한 채 하늘을 날던 백조 왕자들에게 조끼를 던진다. 마지막에는 공주의 화형식은 중단되고 막내 오빠의 한쪽 팔만 백조로 남은 채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

이런 시절 TV에서 틀어주던 동화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이야기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무지 좋아했고 틈만 나면 이 이야기를 보았다. 한 번 엄마에게 TV 다시보기 기능을 배운 후로는 모든 장면과 대사를 외워버릴 정도로 보았었다. 하루 일과에 '백조 왕자' 보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이 이야기를 보다가 문득 결심했다. 나도 공주처럼 누군가를 위해 뜨개질을 해 주고자 마음먹었다.

당시의 나는 불과 9살 정도 되는 꼬마였기 때문인지 몰라도 꽤나 순수한 생각을 했다. 놀이터에 나가서 풀들을 꺾었다. 그리고 3-4개를 잡아서 비비기 시작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실패였다. 풀은 찢어졌고 내 손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게다가 풀에서 나는 냄새까지 손에 남았다. 이후 나는 실을 직접 만드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을 내리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집에 있던 얇은 실을 내 팔 길이만큼 잘라서 볼펜에 묶었다. 다른 한 쪽도 반대쪽 볼펜에 묶고서 이리저리 볼펜을 움직였다. 정확히 하는 방법은 몰랐지만 TV 속 캐릭터처럼 손을 움직이면 가능하리라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만 엉켜버렸고 볼펜도 못 쓰게 되었다. 

그래도 그때 나는 어지간히도 고집이 센 아이었나 보다. 그 만큼 실수했어도 포기는커녕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었다. 바로, 손뜨개질이었다. 실을 왼쪽 4개의 손가락으로 교차시켜 걸고, 그 위로 실을 한 번 더 감아 아래에 있는 실을 뒤로 넘기는 것을 반복하면 고리가 얽힌 듯한 모양의 목도리가 나왔다.

사실 멋대로 목도리라고 말하긴 했어도 목도리의 역할을 해내지는 못했었다. 그렇게 만든 첫 목도리 아닌 목도리는 할머니께 드렸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진짜 뜨개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흥미가 붙었을 때부터는 곧잘 모자나 목도리를 떠 주곤 했다. 뜨개질을 하는 것은 신기했다. 얇은 털실이 천이 되어 가는 것이 나는 너무나 신기했다. 

그러나 시간은 지나갔고 나는 더 이상 뜨개질을 하지 않게 되었다. 휴대폰, 컴퓨터, 친구들……. 뜨개질이 아니어도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얼마든지 있었다. 수업 시간 실습으로 뜨개질을 하게 되어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올해 초,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를 간 집에서 짐을 푸는 데 꽤 오래된 종이봉투가 나왔다. 이게 뭐지, 하고 열어본 나는 신이 났다. 내가 몇 년 전 사용하던 뜨개질 도구들이 있었다. 그렇게 삼촌을 졸라서 손에 넣은 한 타래에 8000원이나 하던 털실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뜨다 만 모양을 보아서는 아마 모자를 만들던 모양이었다. 평소 좋아했던 보라색과 흰색이 섞인 실로 방울을 만들어 둔 것을 보면 꽤 소중한 사람에게 주려고 했었던 걸까? 나는 그 종이봉투를 침대 아래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아빠와 크게 싸웠다. 흔히 부모 자식 간에 있는 싸움이었다. 외국어 고등학교 진학을 원하는 나와 평범한 인문계 진학을 원했던 아빠는 서로 조금도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아빠에게 휴대폰을 빼앗긴 채 씩씩대며 방으로 들어왔다. 당장 휴대폰이 없으니 연락을 해 위로 받는 것은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공부를 하자니 아빠에게 지는 것 같아 괜히 심통이 났다. 한창 할 것을 찾던 도중 뜨개질이 떠올랐고 오랜만에 뜨개질을 시작했다. 

딱히 무언가를 만들지는 않았다. 내 무릎 정도의 넓이가 되는 긴 무언가를 떠 내려갔다. 그래도 오랫동안 했던 실력이 어디가지는 않았나보다. 한 시간 만에 털실 하나를 다 떴다. 문득 그 실을 보니 생각이 났다. 볼펜에 얽혀있던 실들이, 지금의 내가 딱 그랬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내가 원한 건 예쁜 무늬로 짜여진 목도리였지 엉킨 실 뭉치가 아니었다.

분명 노력할수록 내가 짠 목도리는 원하는 모습이 되어갔는데, 어째서 현실의 나는 더 엉키기만 할까. 분명 나는 아빠에게 나를 믿고 응원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결과는 처참하다.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엉키기 시작한 걸까. 한번 실이 엉키기 시작하면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목도리는 완성할 수 없다. 아무리 귀찮고 힘들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처음 말이 엇나갔을 때 사과할걸 그랬어. 다시 시작할걸 그랬어. 바보같이 지지 않으려고 하다가 더 꼬여버리기만 했다. 뜨개질을 하는 내내 이런 후회가 계속 머릿속을 지배했다. 몇 분 뒤 아빠가 내 방에 들어왔고 내게 사과를 했다. 결국 나는 울어버렸다. 그제서야 나도 사과를 했다. 

완벽하게 실을 엮어내려면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할 줄 알아야한다. 한번 실수하면 거기서부터 실은 엉키거나 풀려버린다. 어쩌면 나는 이것을 잊고 있었나보다. 처음 만든 목도리는 너덜너덜했고 실이 끊겨서 완성하고서도 버려야 했다. 이후 천천히 다시 하는 법을 배운 이후로는 실수도 줄어들었다. 지금 내가 부족한 건 그런게 아닐까 싶다. 가끔 실패하더라도 버티려고, 인정하지 않으려하기보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나도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고등학교부 운문 최우수>

       제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2학년 8반 이연주

'비 오는 날 세상에 가득한 물은' 

정적을 깨는 봄비
말 수 없이 안착하여
차가워라 흠칫했다
한 사람의 손은 두 사람의 손이 되고
두 사람은 한 사람이 되어
포갠 손금에 구불구불한 강물이 흐른다
정인의 맥을 따라 산책한 어느 하루

그 비 오는 날 우리는
자그마한 찻집의 권적운
한 타래씩 솔솔 풀며 네 노래 부르고 싶어 한다

"누가 저 오솔길을 발견했을까?"
"그러게"
일곱 살 난 학동이 한 발로 콩콩 뛰며 먼저 간
미끄러운 돌을 골라 밟는다

그 비 오는 날 학동은
물 웅덩이에서 곧 태어날 무지개
알록달록 어여쁘기를 기대하며 재잘거린다

"우산 위에 빗발치는 물방울 형제들"
친구왔다고 술렁이는 달팽이
내 눈치 보더니 돌담에 다닥다닥 붙어
아~ 하고 목 축입니다
나는 우산을 벵그르르 돌리며 횡단보도를 건넜지요"

그 비 오는 밤 우리는
가로등 옆 일렁이는 벚꽃나무의
백분홍 꽃잎을 쓸어만지곤 한다

그 비 오는 밤 학동은 
홍차를 마시며 베란다에 맺힌 
촘촘한 이슬타래를 세어보곤 한다

그 비 오는 어느 날 세상에 가득한 물은
청둥오리의 깃털을 다듬어 주고
개천 바닥의 건조한 암석을 문지르고 
한 연인과 한 아이의 마음에서 부드럽게 찰랑였다


<중학교부 운문 최우수>

'실을 잣는 노인'            한라중학교 2학년 9반 허혜원

노인이 살았다
허름한 초가, 앞마당의 바닷길
노인은 밤마다 실을 잣았다
달의 아스러지는 광휘가 부서진 수면을 따라
고대인의 핏줄처럼 두드러진 손을 움직여,
간간히 흥얼거린 노래의 음표들이 뒤엉켜
붉은 실에 녹아들어 운명을 결정했다
노인이 이름하여 묶인 연들은
불가항력과 같아 끊어낼 수 없는
운명의 길을 따랐다
기다랗게 드리워진 노인의 소맷자락
그 끝에 물든 밤하늘
누군가 그의 이름을 묻노라면
실을 잣던 손길을 거둔 위로
수억 개의 별똥별이 글자를 그려냈다
「월하노인」


다음은 한뫼 문학백일장 입상자 명단.

◇운문 부문 ▲중학교부 △최우수=허혜원(한라중 2) △우수=문소현(남원중 2) 고민지(오름중 2) △가작=김서연(제주동중 2) 오영아(탐라중 3) 김수현(노형중 3) △장려=송예준(아라중 3) 부혜원(제주여중 2) 임수지(조천중 1) 강유정(한림여중 1) 김성국(한림중 3) 강해인(중문중 1) 박성현(제주동중 2) 이승찬(세화중 3) 정소희(서귀포여중 1) 강찬정(제주중 1) ▲고등학교부 △최우수=이연주(제주사대부고 2) △우수=김수민(서귀포여고 2) 박여민(제주사대부고 2) △가작=강예나(서귀포여고 2) 심영은(제주사대부고 2) △고호건(오현고 2) △장려=김민재(오현고 2) 이건희(제주제일고 2) 임성우(대정고 2) 홍종현(대기고 1) 
◇산문 부문 ▲중학교부 △최우수=박주은(오름중 3) △우수=부하영(제주중앙여중 3) 김가연(노형중 3) △가작=김수연(귀일중 3) 정지윤(제주서중 1) 임혜빈(신엄중 3) △장려=김태건(제주제일중 3) 고다은(탐라중 3) 김세이(위미중 3) 허수진(함덕중 3) 김채은(김녕중 3) 오지호(신성여중 2) 조수빈(서귀중앙여중 1) 윤소리(제주사대부중 3) ▲고등학교부 △최우수=장효경(서귀포여고 2) △우수=박시내(서귀포여고 2) 이우리(서귀포여고 1) △가작=이중찬(대정고 2) 홍영기(대기고 1) 박민정(서귀포여고 1) △장려=고예나(서귀포여고 1) 조윤주(제주여고 1) 최시원(제주외고 2) 김상현(오현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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