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서 제주지방기상청장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시인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의 첫 소절이다. 이 시의 해석은 다양하지만 사물은 그 이름을 부름으로써 대상화되고 인식된다는 '인식론적 세계'를 노래한 시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빅데이터'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김춘수의 시에 비유하자면 데이터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할 뿐이며 그것을 정의하고 가치를 더할 때 비로소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소중한 '정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기상청은 기상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날씨 정보를 생산하고 국민에게 신속하게 제공한다. 날씨예보는 불확실성이 존재하여 틀린 경우에는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관측정보는 현재 날씨를 있는 그대로 측정하여 제공하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정보라고 볼 수 있다.

기상관측정보는 측정된 데이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정보를 정확히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관측 위치, 지형 정보 등 '공간 정보'가 포함된 통합 정보를 의미한다. 관측 위치를 제공하지 않거나 혹은 부정확하게 제공한다면 정보로서의 가치를 잃고, 사용자가 활용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올해 2월 제주는 강한 추위와 함께 장기간의 폭설로 하늘길이 막히고 차량운행이 통제되는 등 사회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 

당시 '어리목' 지점은 99.5㎝, '아라' 지점은 53㎝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그러나 '아라' 지점의 관측정보가 아라동의 주민 주거지 적설량과 많은 차이를 보여 주민들이 날씨 정보를 활용하는데 혼란을 빚어 지역 언론의 지적이 있었다.

사실 아라동의 관측장비 위치는 주민들의 실제 주거지와 큰 차이(해발고도200m)가 난다. 이러한 지형적인 영향으로 기상청에서 발표된 날씨 정보와 종종 달라 지역 주민의 민원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는 관측된 데이터의 신뢰성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주민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적절한 '위치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는 그동안 기상청의 '지점명 관리기준'이 제주만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기상청은 읍·면·동 단위의 행정구역명 적용이 원칙이며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근 대표적 시설 혹은 자연명칭 등을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의 일부 마을은 해안에서 한라산 중턱까지 행정구역으로 돼 있다. 마을 내에서 수백m의 해발고도 차이가 나타나 기상학적으로 특정위치가 그 마을 날씨를 대표한다고 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다행히 지난 6월 기상청은 현실적인 여건을 받아들여 오해를 불러일으키던 부정확한 관측지점 명칭을 바로잡아 누구나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정비했다. 아라는 '산천단', 봉성은 '새별오름', 용강은 '한라생태숲'이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도민과 관광객에게 다가가고 있다.

앞으로도 기상청은 사용자 시각에서 관측정보를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개선할 것이며 이번 사례가 날씨 정보에 대한 혼란을 해소와 기상서비스 만족도 향상에 작지만 큰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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