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전 동국대교수 겸 학장·논설위원

문화는 인간에 의해서 창조되지만 '주변조건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환경속성과 함께 지역차이(regional difference)를 드러내는 것도, 이런데 연유한 것이다. 인간이 '환경을 이용하는 주체'이더라도, 객체(客體)에 해당하는 환경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환경에 따라 문화가 달라질 정도로 '둘의 관계는 밀접'하다.  

전쟁이 빈발한 지역일수록 '청년남성은 희생'으로 이어진다. 전쟁을 '수행하는 주역'들이 청장년남성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별구성에서 '여성을 우세'하게 만들므로, 이를 조정하기 위하여 '일부다처(一夫多妻)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인종과 종교에 걸쳐 분쟁이 극심했던 중동(mideast)지방에서, 이런 제도가 성립되고 전승되어온 사실이 '통계적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왕비가 22명이고, 왕자가 45명이란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전제군주(君主)제의 특성과 더불어, 현재진행형의 전쟁에서 보여주듯, 남자희생이 가져온 사회관습과도 관계된다. 미국서부에는 개척과정에서, 유사(類似)제도가 등장했는데 '젊은 남성들의 희생'에 의한 궁여지책임으로 보인다. 중심지로 알려진 곳이 솔트레이크이며, 그리스도교종파인 '모르몬(mormon)교의 본거지'에 해당한다. 

교도들은 결집력강화로서 '백화점 등의 활동'에서,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다처(一夫多妻)제를 적용'함으로써,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미국이미지와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서부개척시대를 통하여 인디언들에게 남자들이 희생되고 '성비(sex composition)의 불균형'에서, 오는 모순을 해소하기 위한 방책이며 제도였다.  

제도(制度)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형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곳만이 갖는 사회적 특성으로 해석되며, 문화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를 안게 되었다. 이것이 지역마다 다른 이질(異質)성과 '다양(multiple)한 문화형태'인데, 근본요인이 환경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 제주도는 예전부터 삼다(三多)도로 표현해왔다. 돌과 바람 그리고 여자가 많은데 따른 것이었다. 

돌과 바람이 많은 것이 자연환경이라면, 여자가 많은 것은 사회적 환경이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여다(女多)로 표현하는 성비(性比)'인데, 해난(海難)사고에 의한 남성희생과도 관계된다. 배를 타고 어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꾸려온 것이 '해안지역남성들의 험난한 생활상'이었다. 하지만 장비가 열악하고 기상정보마저 빈약했던 시절, 강풍과 파도에 밀려 죽음을 면치 못해왔다. 

이를 뒷받침하듯 해녀들이 부르는 "이어도산아"에는 '방죽건너의 연꽃을 구경하느라, 돌아올 줄 모르더라'는 한탄조의 가사가 나온다. 남편의 죽음을 '피안(彼岸)의 세계로 건너간 것'으로, 바라본데 따른 것이다. 거친 '풍파(風波)에 기인한 것'이며, 남성희생에 의한 '성비의 불균형'을 낳게 했다. 이런 결과는 비율이 낮은 것에 대하여 '상대적 희소가치'를 발휘하게 되었다. 

이것이 "탐라순력도(巡歷圖)"에 수록된 '남귀여천(男貴女賤)의 글귀'이며, 일부다처제가 등장한 배경이었다. 이후 전란이 겹쳤을 때에도 남성희생이 많았음으로 '남녀에 걸쳐 인생운명'을 바꾸어놓았다. 새옹지마(塞翁之馬)를 떠올리는 장면들이다. 건장한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희생되어온 것과 대조적으로, 불구의 몸이 오히려 '안전한 후방'에서, 남성으로 행세해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누려왔음으로, 제도보장이 없었을 뿐 일부다처제와 마찬가지다. 오늘의 촌락사회는 촌외전출로서 남다(男多)현상을 드러냈고, 대책으로 '다문화(多文化)가정이 등장'했다. 이것역시 사회변화추세에 맞춘 '문화형태의 단면적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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