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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기획연재 잊혀져가는 항몽 유적을 찾아서
기획/ 인천 강화도, 항전의 지휘부·역사적 장소로 부각3.대몽항쟁의 시작 강화 삼별초
김지석 기자
입력 2018-07-08 (일) 14:20:34 | 승인 2018-07-08 (일) 16:35:11 | 최종수정 2018-07-22 (일) 16:24:59
강화도 외규장각.

강화도는 외세의 침략과 압력의 시기에 중요한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특히 13세기 몽골의 침략에 장기항전이 전개되던 1232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는 39년간 고려의 수도로서, 그리고 항전의 지휘부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면서 역사적인 장소로 부각되고 있다.

△ 세계최강 군대 몽골, 고려를 침략하다
테무친(Temujin)은 몽골족을 통일한 뒤 1206년 칭기즈칸(Chinghis Khan)이라 칭하고 원(元) 나라를 세웠다. 원 나라는 중앙아시아 대륙을 통일하고 지금의 남부러시아와 아라비아, 유럽 이탈리아반도 북부까지 정복했다.  

고려가 세계최강 군대를 가진 몽골과 맞부딪친 것은 금나라 유민인 거란족이 몽골 군사들에게 쫓겨 고려 땅으로 들어오면서다. 

1225년(고종 12) 몽골의 사신 저고여가 압록강변에서 피살되고 몽골은 이를 고려의 소행이라면서 1231년부터 고려침입을 단행했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 한 켠에 위치한 항쟁비.

△강화, 고려의 임시 수도가 되다
1232년(고종19), 6월 무신정권의 최고 실력자 최우가 개경에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최우는 군사들을 시켜 강화도에 궁궐을 짓고 도성을 쌓도록 지시했다. 아울러 개성에 살던 주민들에게 정해진 날짜 안에 강화도로 이주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고려왕조도 수도 개경을 떠나 강화도로 옮겼다. 이에 '강화현'이었던 강화도는 '군'으로 승격하며 강도(江都)로 불리게 된다. '고려사'는 고려 고종 18년(1231) 몽골의 내침 이후 그 이듬해(1232)에 강화도를 천도하고 몽골군과 대치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때 세운 도성과 궁궐은 모양이 개경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몽골의 침략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되는 몽골의 침입은 고려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국토는 황폐해지고 많은 백성이 죽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화려했을 고려궁궐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휑한 궁터만 남아 권력의 무상함을 전하고 있다. 

△개경환도와 삼별초 항쟁의 시작
친몽파 무신인 김준 등은 1258년(고종 45) 60년간 이어진 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수장 최의를 죽이고 몽골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추진한다. 

1259년 고종이 죽자 태자가 왕위에 올라 원종이 됐다. 원종은 1270년(원종 11)에 귀국해 개경환도를 결정하게 된다. 1232년 강화도로 들어간 뒤 38년 만이다.

하지만 삼별초의 수장 배중손 장군은 개경환도와 함께 고려 최정예부대 삼별초가 해체된다는 사실을 알고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세우고 몽골에 맞서 '최후의 순간까지 항전'을 결의했다.

1270년 6월3일 배중손 장군은 삼별초와 백성들이 탄 1000여척의 배들을 이끌고 남쪽 진도로 향했다. 

△삼별초 출항지 지키는 돌하루방과 진돗개
'고려사'는 삼별초가 강화도 서북해안을 통해 남하했다고 기록하고 있을 뿐 정확한 포구는 찾아볼 수 없다. 현재까지 삼별초가 떠난 자리로 추정되는 곳은 외포리 선착장이다. 하지만 삼별초가 떠난 자리를 지금의 선두2리 마을회관 뒤쪽 바다였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월 26일 찾은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는 몇몇 관광객만 눈에 뛸 뿐 한산한 모습이었다.

외포리 선착장 한 켠에 삼별초 항몽전적을 기리는 항쟁비 '三別抄軍護國抗蒙遺墟碑(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가 있다. 항쟁비 앞쪽에는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진도를 상징하는 진돗개 동상이 함께 서 있어 이 곳이 삼별초 대몽항쟁의 시작된 곳임을 알리고 있다.

'고려왕도 찬란한 문화를 누리다'

강화고려문화축전 28일부터 29일까지 개최

인천 강화군은 고려건국 1100주년을 맞아 '고려왕도 찬란한 문화를 누리다'란 주제로 한 '강화고려문화축전'을 마련해 관심을 끌고 있다.

오는 28일부터 29일까지 강화군 용흥궁공원 주차장과 강화읍 일원에서 열리는 이번 강화고려문화축전에서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고 고려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됐다.

첫날인 28일에는 강화읍 일원에서 고종황제 행차 및 팔만대장경 이운 과정 재현 행사를 개최한다.

둘째 날인 29일에는 강화 천도길 걷기 행사와 삼별초 항쟁 재현 퍼포먼스 등 13세기 강화가 고려의 수도였던 강도시기와 삼별초 이야기를 재조명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또 부대 프로그램으로 강화미술관에서 강화 개성 고려유물 유적 사진전이 오는 20일부터 진행된다.

강화도서관에서는 오는 27일부터 고려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 강연회를 열고, 고려궁지에서는 고려문화그리기대회 수상작을 전시한다. 

한편 강화도에는 고려가 개성으로 환도하기 전까지 39년간(1232년~1270년) 궁으로 사용했던 고려궁지(사적 133호)와 강화산성, 홍릉, 석릉, 가릉, 곤릉 등 다양한 문화재가 존재해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장소…적극적인 연구 필요"

김형우 교수.

[인터뷰] 김형우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 교양대학 교수

"삼별초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김형우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 교양대학 교수는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강화도에서도 삼별초연구회가 구성돼 삼별초에 대한 고증 활동이 활발히 이뤄졌다"며 "하지만 학자들간 삼별초에 대한 역사적 견해의 차이와 함께 고인돌과 단군 등의 역사 콘텐츠에 밀리기 시작해 점차 관심도는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강화도는 삼별초의 시발점이자 출발지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는 장소다"며"이에 강화도에서 처음 봉기했을 때의 상황과 배 1000척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등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삼별초가 진도에서 패망해서 항전을 그만뒀더라면 살려고 도망갔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제주에 이어 일본 오키나와까지 항전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삼별초의 대외항쟁적 자주정신과 저항정신은 본받을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것에 초점을 맞춰 강화도-진도-제주도-일본 오키나와를 잇는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석 기자  kjs@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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