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성 편집상무

세계 대부분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굴뚝 없는 산업'으로 불리는 관광업을 진흥시키는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반면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물가가 치솟고 자연환경이 훼손되는가 하면 지역정체성이 사라지면서 무작정 관광객을 반길 수만은 없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투어리즘 포비아 남의일 아니

그러면서 관광객 공포증을 뜻하는 투어리즘 포비아(Tourism Phobia)나 수용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관광객을 의미하는 오버 투어리즘(Over Tourism)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낙후됐던 지역이 재건축 등으로 번성하면서 중상류층이 유입돼 비싼 월세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빗댄 투어리피케이션(tourification)도 이제는 귀에 익은 용어가 돼버렸다.

반 관광정서를 대표하는 이들 현상은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가지가 촘촘한 운하로 연결된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전통적인 상점과 공방이 도심에서 밀려나자 시민들이 관광객 유입을 반대하는 전단을 붙이고 항의 시위에 나서고 있다. 인구는 5만명에 불과한데 연간 관광객이 2000만명을 웃돌다보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특히 필리핀은 지난 4월 보라카이섬의 자연환경이 아주 심각하게 훼손되는 지경에 이르자 6개월 폐쇄라는 극단적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서울시 종로구 북촌한옥마을과 전남 여수 등이 투어리즘 포비아가 심각한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관광객으로 주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여수 밤바다'로 급부상하고 있는 인구 30만 도시 여수는 작년에만 150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 소음, 교통체증, 주차난 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제주에서도 부동산값과 물가 폭등 및 난개발 등의 영향으로 투어리즘 포비아 내지 오버 투어리즘 분위기가 점점 번져가고 있다.
이처럼 "tourist go home(관광객은 집으로 가라)"을 외치는 현상이 전혀 낯설지 않은 가운데 제주도가 최근 관광객을 대상으로 환경보전기여금을 징수하는 방안을 추진, 귀추가 주목된다. 

관광객과 차량이 급증하면서 생활폐기물과 하수발생량이 크게 늘고 대기오염과 교통혼잡까지 심화돼 환경보전기여금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용역 결과를 토대로 숙박 시 1인당 1500원, 렌터카 1일 5000원, 전세버스 이용요금의 5%를 부과하면 시행 3년차에는 총 1500억원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제주를 찾는 내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들 것이라는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한 국가나 지자체가 한둘은 아니다. 

한국지방재정학회가 지난 5월 제주도에 제출한 '환경보전기여금 제도 도입 타당성 조사용역' 완료보고서에 따르면 호주, 일본 교토시, 몬테네그로, 스페인 발레아레스섬, 인도 케랄라주, 몰디브 등 10여 곳이 환경보전을 위한 환경관리부과금·환경세·숙박세·입도세 등을 물리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다 남북 관계가 점차 풀리면서 금강산관광 재개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환경보전기여금까지 가중된다면 제주도내 관광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시기상조론보다 적극 대응을

하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자 차제에 양적 관광에서 벗어나 질적 관광으로 전환하자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 바로 1~2년 전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관광객 1인당 평균 8000원 정도 부과되는 기여금 때문에 관광객이 오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며 기우에 가깝다고 본다.

어차피 필요한 제도라면 시기상조론을 내세우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제주의 자연환경이 훼손되기 전에 도입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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