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출판시장의 키워드는 단연 ‘신화’였다. 이윤기의 「그리스 신화」를 필두로 해서 수많은 신화 관련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신화 열풍의 근간에는 현실의 고단함을 상상으로 이기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신화적 상상력은 판타지 열풍과 맞물려 새로운 창작의 영감의 원천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신화의 열풍은 다분히 우리 사회의 서양 편식주의를 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한계 극복이라는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산해경, 포박자 등 중국신화 서적의 출판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는 하나의 실례다.

 여기 또 하나의 신화서적이 독자의 시선을 잡는다. 서구적 편식주의에 편승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아시아 사유의 원천인 동양신화를 그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는다.

 1만8000 신들의 고향이라는 제주의 신화, 그리고 그 숱한 신화 속의 여성신에 대한 논의를 담은 「자청비·가믄장아기·백주또」는 여성의 시각에서 신화 속 인물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눈길을 끈다.

 신화에 나타난 여성성에 대한 관심은 최근 또 다른 신화 읽기의 코드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 속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지적한 「신화속의 여성, 여성 속의 신화」(장영란 지음)가 다분히 신화 속에서 왜곡되어진 여성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자청비…」는 여성이 신화의 주인공인 제주 신화의 특징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세경본풀이의 주인공인 자청비의 모습에서 여성해방의 선구자로서의 여성성을, 삼공본풀이의 주인공인 전상신 가믄장아기를 통해 가부장적, 천부적 사회인식을 거부하는 적극적인 여신상을 발견한다.

 송당 당신인 백주또에서는 적극적이며 미래에 대한 예지를 가지고 자기주도적으로 생활하는 여성 원형을 설명한다.

 신화가 곧 당시 현실 상황의 또 다른 반영이라는 점에서 제주 신화의 여성성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제주에서 여성의 위치, 특히 여성의 가치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할망바당, 조냥정신, 겹부조 관습, 여성들의 직접이며 다양한 형태의 경제활동 참여 등 제주의 사회적 변별성이 제주 신화 속 여성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세계사적 흐름에서, 특히 한국사회에서 여성이란 언제나 타인(The Other)에 불과하였다. 남성중심적이며 때론 남근중심주의적 사회 속에서 제주 신화의 여성신들을 통해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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