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도 틔우지 못했는데…"

연이은 폭염으로 가뭄이 심화되면서 급수 요청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13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한 당근 밭에서는 급수 지원을 받지 못해 이동식 물저장조(물빽)가 비어 있다. 이 지역 농민인 이영표씨(48)는 "급수 요청이 밀려 오늘내로 물 공급을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지난달 심은 당근 모종이 여태껏 싹도 틔우지 못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소진 기자

구좌 가뭄에 수급도 어려워 "급수 안나오는 곳도"
하루 350t 공급해도 파종한 당근 70% 발아 안돼

"콸콸 나와야 할 물이 졸졸 나오고 있다. 당근 싹은 아직도 틔우지 못했는데 지하수도 메말라가고 있다"

13일 오전 11시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인근 급수탑. 1~2t 규모의 저장탱크를 실은 1t 트럭 3~4대가 잇따라 들어섰다. 인근 당근 밭에 줄 물을 수급받기 위해 모인 농민들이다.

당근 농사를 짓는다는 김창희씨(70)는 "4t 물을 받는데 30분, 밭에 스프링쿨러로 뿌리는 시간은 단 5분"이라며 "또 돌아와 물을 받으려고 해도 이미 3~5대가 대기 중인 탓에 2~3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푸념했다. 

이어 "물의 양도 적고 속도로 느려서 저장탱크 1개 채우는데도 오랜시간이 걸린다. 어떤 이는 밤 11시까지 대기한다"며 "심지어 농업용수가 나오지 않는 지역도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다른 밭에는 이동식 물저장조(물빽)를 설치하고 읍사무소에 수급을 요청했지만 신청자가 너무 많아 오늘내로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 밭주인 이영표씨(48)는 "지난달 말에 파종했는데 여태 싹도 나지 않았다"며 "계속 물을 공급해주는 것도 한계"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날 인근 지역에서 감자 파종을 시작한 김순자씨(71·여·가명)도 "땅에 수분이 없어 퍽퍽하다"며 "감자가 썩을 수 있지만 그래도 파종시기를 놓치면 한해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시 구좌읍 지역에 '재난급 폭염'이 지속되면서 농가들의 한숨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특히 급수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가뭄 해소에 역부족해 예비비 등 예산을 투입해 보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구좌읍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농작물 가뭄대책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가뭄극복현장상황실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현재 농업용 관정 51곳, 급수탑 44곳이 가동 중이며, 양수기 52대와 물빽 110개 등을 지원받고 있다.

또 소방차, 가축분뇨차, 물차, 산불·방역차량, 농어촌공사, 활여 차량 등을 지원받아 현재까지 4233t의 물을 구좌지역 밭에 공급했다. 12일 하루만에도 680t, 하루 평균 350t 이상의 수급 조치됐다.

심지어 제동목장과 성읍저수지에 있는 원거리 지역의 물까지 싣고 와 구좌지역 밭에 뿌리고 있지만 여전히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구좌지역에 당근 재배면적(1206㏊)의 약 90% 이상 파종됐지만, 이 중 70% 이상이 발아되지 않았다.

구좌읍 관계자는 "물차를 더 요청하려고 해도 도내에 물차가 없는 상황"이라며 "읍내 전 직원이 수급에 총동원돼 가뭄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급수, 인력, 물자 등을 더 동원하고 장기적으로는 수급탑 용량 증설, 마을별 분산 저장소 설치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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