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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제주해녀항일운동 재조명 성역화 사업 등 탄력 받나
고 미 기자
입력 2018-08-15 (수) 15:43:06 | 승인 2018-08-15 (수) 15:47:25 | 최종수정 2018-08-16 (수) 10:55:05
해녀항쟁 판결문.

문재인 대통령 정당한 평가·예우 약속…추가 서훈 등 기대
우리나라 근대사적 위치 부상·해녀문화사업 완성도 제고도


문재인 대통령이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사 통해 제주해녀 항일운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예우'를 약속하며 그동안 답보 상태였던 조명사업과 성역화 사업 등에 탄력이 기대되고 있다. 

△관련 독립유공자 11명 중 여성 3명
문 대통령이 언급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의 시작으로 고 고차동·김계석· 김옥련·부덕량·부춘화 등 해녀 5명 중 3명 만 국가유공자로 선정됐다. 해녀항일운동과 관련해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11명 중 여성은 이들 3명이 전부다.

이마저도 1995년 결성한 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가 2000년부터 해녀 항일운동에 대한 본격적인 재평가 작업을 벌인 결과다.

제주해녀항일운동과 관련해서 1990년 혁우동맹원 김시곤씨(1983년 작고)씨가 처음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이어 2003년 해녀 부춘화(1995년 작고)·김옥련(2005년 작고)씨와 혁우동맹원 문도배(1953년 작고)·한원택(1938년 작고)씨 등 4명이 추가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광복 60주년인 2005년 혁우동맹원 강관순(1942년 작고)·김성오(1986년 작고)·김순종(1972년 작고)씨와 해녀 항일운동 배후 주도자로 확인된 신재홍씨(1946년 행방불명)와 해녀 부덕량씨(1939년 작고)가 건국포장을 받은 이후 추가 인정 사례는 없는 상황이다.

혁우동맹 산하 하도강습소 1기 졸업생으로 해녀 항일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해녀 김계석·고차동(고순효)씨에 대한 서훈 신청은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다.

해녀항쟁 당시 언론보도.

△유네스코 후광효과 미미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해녀항일운동 등 여성독립운동가 발굴·포상확대 계획을 밝혔다. 특히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대대적인 재평가 작업이 예고되는 등 그동안 사회주의 색채 등의 이유로 외면했던 상황에 대한 반성과 근대사적 위상을 부각시킬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1931년 6월부터 1932년 1월까지 제주시 구좌읍·성산읍·우도면 일대에서 펼쳐진 '제주 해녀 항일항쟁'은 연인원 1만7000여명이 참여, 무려 238회의 집회 및 시위를 전개한 우리나라 최대 어민운동이자 전국 최대 규모의 여성운동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이 크지 않았던 때였다는 점에서 '여성중심의 첫 생존권 투쟁'으로도 해석한다.

이번 문 대통령의 언급이 이 같은 해녀문화와 항일운동 유산 계승에 대한 제주 도정의 미온적인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제주해녀항일운동와 관련해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공식 자료는 「제주해녀항일투쟁실록」(1995년)이 유일하다. 제주해녀항일운동공원 조성 등 성역화 사업도 2014년 6월 기본계획 용역을 마친 이후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등재 이후 후광효과를 위한 다양한 사업이 이어지고 있지만 해녀항일운동과 관련해서는 매년 열고 있는 기념사업 예산이 늘고, 올해 첫 해녀의 날(9월 22일)에 해녀항일운동의 대표자였던 부춘화·김옥련·부덕량 등 3명의 흉상이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탑 인근에 설치하는 것이 전부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매년 해녀항일운동에 대한 평가와 지원을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된 적은 없었다"며 "이번 대통령의 언급 이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미 기자  popm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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