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덕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논설위원

평가와 자문은 사전적 의미는 다르지만 행위가 이루어질 때는 두 단어가 혼용돼 쓰이는 경우가 있다. 즉 평가는 말 그대로 객관적 기준에 따라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고, 자문은 객관적 기준을 준용하지만 개인적 의견이 많이 반영돼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형태로 외부인의 평가를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평가를 받아본 사람들은 평가자의 언행, 태도, 요구조건 등에 대해 불편한 기억이 있을 것이고 평가만 해 본 사람들은 평가 대상자의 고충에는 무관심하고, 마치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양 내려다보기 시선을 지닐 것이다. 물론 이는 평가자의 성품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현대사회에서 평가는 보편화되고 있다. 평가는 개인이 주체가 되기도 하고, 기관이나 단체가 될 수도 있다. 평가를 하는 주체는 정해진 기준에 따라 명확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반면 평가를 받는 대상은 어떻게 하면 목적한 대로 잘 받을까를 고민한다. 물론 증거자료에 따른 정량적 평가는 논란의 소지가 덜하다. 이때도 일방적으로 평가하고 단정하는 주체들은 그 결과를 고민하지 않고, 마치 자신들의 책무를 다한 것으로 착각해 마음껏 말과 글로 결과를 던진다.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평가 대상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사실 평가자는 나름대로 정확하게 평가한다고 해도 피평가자가 볼 때는 평가 대상에 대해서 기존 지식도 부족하고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결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평가자의 의견이 당락에 영향을 미칠 경우 평가자의 얄팍한 지식이 중요한 일을 시작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평가할 때는 피평가자의 설명을 듣고 궁금한 점을 질문할 수 있다. 이때 평가자의 어조와 화법은 정중해야 하며 피평가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은 삼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은 사람의 일이라 평가자도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고 하다보면 피평가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반면 피평가자에 따라서는 대충 평가해 주면 될 일을 뭐 그리 깐깐하게 구느냐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정말 성의 없이 자료를 준비해 와서 평가자들을 허탈하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평가자든 피평가자든 합당한 예의를 갖추고 서로를 존중해 주면서 일을 진행한다면 억울하다는 인식은 줄어들 것이다.

평가를 하거나 자문을 해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합당한 예의가 필요하다. 

제주 사회에서 자문(諮問)하는 일은 일상화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정기관은 물론 공공기관에서는 가능하면 자신들의 업무와 관련해 소위 전문가들의 의견을 공유하고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간혹 의례적인 행위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때 전문가 조언은 개개인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알려주는 등 일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은 마치 자신의 발언이 절대적인 양 훈계와 명령조로 발언을 하면서 모욕감을 주기도 한다. 단지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자문하는 대상자들은 그 내용을 모르거나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최대한 청취하려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좀더 공부해라, 너희들은 이 분야를 너무 모른다" 등 자신의 지식을 뽐내면서 훈수한다. 

아쉬운 점은 그런 말을 하는 전문가는 자신의 무지를 여과없이 노출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깊이와 중요도를 바로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자문위원이 한마디만 해도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어떻게 반영할 지를 머릿속에 그린다.

자문을 해주거나 의견을 제시할 때는 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합당한 조언을 하는 것이 전문가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평가의 주체가 될 수도 있고, 평가의 대상자가 될 수도 있음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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