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수 전 초등학교 교장·논설위원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란 시의 내용처럼 정년퇴직을 하고 신중년이 되어서야 그 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즉 세상의 중심이 나 자신에서 조금씩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도 눈이 가고, 갑자기 잊고 지내던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결국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지식도, 열정도, 용기도 아니고 '착함'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 내 자리를 남에게 조금 내주는 착함이 없다면 세상은 싸움터가 되어 금방이라도 무너질지도 모른다.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즐기는 법을 배우고, 베푸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버릴 것을 버리고, 배울 것을 배우는 게 신중년의 시간을 연장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신중년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 깊은 맛을 음미하면서 살아보라. 혜안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그러면 죽어가는 신중년이 아니라 멋지게 사는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열심히 산다면 신중년은 축복의 순간이 된다. 지금까지는 현실에 얽매여 있었는데 이제는 삶의 깊이와 내면에 관심을 둬야 한다. 내 앞길에 고민의 안개가 모두 걷혀 투명하다. 그래서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더 바랄 것이라고는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등산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올라갈 때 승승장구하다가도 내려갈 때 실수하면 모든 성과를 다 놓치고 실패한 인생이 될 수도 있다. 등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중요하다. 낙상사고도 내려갈 때 더 많이 일어난다. 

인생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없다. 그만큼 현실에 정성과 최선을 다해도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는 생각이다. 신중년은 새로운 성장이 가능한 '2차 성장기'로 받아들여진다. 그걸 찾아낸 건 인생을 보는 새로운 생각,나이 듦을 쇠퇴가 아니라 성숙으로 보는 '긍정의 심리학'이다. 우리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나 자신도 과거에 집착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느라 소중한 지금, 그리고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하지 못한 때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도록 하겠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신중년 세대를 걱정하는 여러 가지 경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에티켓 훈로정음'에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공중화장실 등에서 새치기를 하지 않기, 길을 물을 때는 "미안하지만 길 좀 물어봐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하기, 누구든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높임말을 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 공무원 행동강령을 빗댄 '정년퇴직자 행동강령'에는 '말은 1차만 하자, 대화할 때 새치기하지 말자. 목소리를 낮추자'라고 권유하고 있다. 신중년이 되어서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 꼰대를 검색해보니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라고 한다. 서산대사의 선시 '눈길을 밟으며'에 나오는 '눈 덮인 벌판을 지날 때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 발자국은 뒷사람들의 길이 된다'는 글귀를 명심하자. 올곧게 처신을 바로 해 후배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기 전에 열까지 숫자를 세거나 겉치레뿐인 허영을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자제력이 있다면 신중년의 삶은 훨씬 더 수월해 질 것이다. 그리고 신중년에는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배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받기 전에 먼저 주는 것이고, 날마다 노력하는 것이며 자연스럽게 즐거운 것이며 사소하지만 위대한 것이다. 

100세 앞둔 김형석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인생 황금기는 신중년 60~75세이며 60세부터 제2의 마라톤(공부, 취미 등)을 시작하고 90까지는 자신을 가지고 뛰라"고 충고하고 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신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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