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 정치부 부국장

올해처럼 일자리 얘기가 많이 나온 해는 없는 듯 싶다. 지난달 청와대에서 열린 민선 7기 첫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고용지표 하락으로 국민 걱정이 크고, 지역경제도 구조조정 여파로 어려운 곳이 많다"며 "좋은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정부와 지자체가 맞닥뜨린 최대 현안"이라고 말했다. 또 "일자리 예산이 실효를 거두려면 정부와 지자체 간의 강력한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도지사들도 하나같이 일자리 창출에 입을 맞췄다. '고용위기 상황'을 극복할 '지역 맞춤형 일자리'는 안타깝지만 전혀 새롭지가 않다.

물론 현장에 나온 단어들의 조합은 그럴 듯 했다. 청년 뉴딜 일자리, 공익형 민간 일자리를 만든다거나 블록체인 특구나 경제거점 등 신산업 유치·활용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의 대안을 제시하고 또 자신했다. 일자리 사업 재원 활용에 있어 지자체다 더 많은 재량을 갖고, 책임 있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후속조치도 나왔다. 

하지만 더듬어 생각해보면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제주에서는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비정규직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고, 임금이 낮은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 뒤에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말이다. 일자리 미스매치도, 산업 구조상 한계라는 말도 너무 자주 써 식상할 지경이다. 이런 상황은 나아지지도 않았다. 주요 고용지표를 보면 제주 지역 노동가능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비율은 낮아졌다. 제주지역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해 7월 73.2%까지 치솟다가 올 4월 60%대로 진입한 이후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8월 제조업 고용 감소율은 10.3%나 됐다. 폭염 등으로 가동률이 떨어진 탓을 들 수도 있지만 일자리 미스매치의 현장에 구멍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관리자·전문가 그룹이 6월 이후 최근 4년 중 최저 수준인 4만 5000명 이하로 위축된 상황도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실업급여 지급 규모 증가다. 8월을 기준으로 제주에서 실업급여를 받는 인원은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실업자 외에 실업급여 신청 대상인 36시간 미만 근로자 비율이 전체 취업자의 35.9%나 됐다. 실업급여는 일자리 예산에 포함된다. 정부가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대폭 확대했다는 바로 그 예산이다. 매년 일자리예산을 늘렸는데도 '고용엔진'이 멈춰 섰다는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2014년 베이비부머 세대의 고용 충격을 겪었던 학습효과도 현재 느끼고 있는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후 재취업·노후 고려한 장년고용대책이나 자영업 주기별 관리라는 대책까지 줄을 이었었다. "우리 경제의 체질이 바뀌면서 수반되는 통증"이라는 정부 입장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이대로라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이상은 힘들지 않겠냐는 귀엣소리에 자꾸만 흔들린다.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감정이 마음속에 흐르는 것이 공감이라면 남의 딱한 처지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연민이 마음 한 구석에 고이면 동정이라는 웅덩이가 된다.…누군가를 가엽게 여기는 감정에는 자칫 본인의 형편이 상대방 보다 낫다는 얄팍한 판단이 스며들 수 있다. 그럴 경우 동정은 상대의 아픔을 달래기는커녕 곪을 대로 곪은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 것밖에 안 된다". 지금의 일자리 창출 정책도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청년이 힘드니, 40대가 고전하고 있으니까가 일자리를 만드는 이유일 수는 없다. 새로운 일자리라는 것은 가만히 기다리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얻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적어도 맞춤형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먼저 가동해야 한다. '좋은'일자리라는 것이 능력에 맞춰 일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분명히 하자면 '정확한'일자리가 좋은 일자리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그에 따른 대가가 어떻게 산정되는지를 알고 선택하는 것 만큼 좋은 일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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